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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대중교통 공짜의 날

우성규 종교부 차장


지난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전역을 잇는 전철 버스 자전거 등 대중교통수단이 하루 동안 무료였다. 시민들은 평소와 달리 ‘TAP’이라고 부르는 교통카드를 접촉하지 않고 도착하는 버스와 전철에 자유롭게 탑승했다. 서울시의 ‘따릉이’와 비슷한 공유자전거 ‘메트로 바이크’엔 2024년 2월 4일을 상징하는 020424 코드를 입력하면 30분간 공짜로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LA의 경우 지난해 2월 4일에 이어 두 번째로 시행된 이른바 ‘대중교통 형평성의 날’이었다. 미국의 20세기 민권운동을 촉발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의 주인공 로자 파크스 여사의 생일인 2월 4일을 기념해 제정된 날이다. 우리말로는 ‘대중교통 공짜의 날’이 더 와닿는다.

개인 일정으로 LA에 단기 체류 중인 기자는 이날 가족을 이끌고 일부러 자동차 대신 전철을 타러 나섰다.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 차가 없다는 건 시민권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중교통은 교도소에서 갓 출소했거나, 무언가에 중독된 노숙인이거나, 후줄근한 후드를 깊이 눌러쓴 이들이 더 많이 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대중교통 공짜의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길거리 범죄의 위험이 상존하지만 그래도 전철 안에서 차창 너머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미국 민권운동의 역사를 나누고 싶었다.

파크스 여사는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한 백화점에서 일을 마친 후 버스를 탔다. 이날 버스는 만원이었다. 버스 앞부분 백인 전용 칸이 만석이 되자 버스 기사는 뒤쪽 유색인종 칸의 좌석에 앉아 있던 파크스 여사에게 일어나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더 뒤쪽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함께 앉아 있던 세 명의 흑인은 이 요구에 순응해 이동했으나 파크스 여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자 파크스 여사는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요”라고 답했다.

파크스 여사는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흑백 분리와 관련한 몽고메리시의 조례를 위반하고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혐의로 입건된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흑인들과 민권운동가들이 전국 각지에서 파크스를 돕기 위해 몰려와 버스 보이콧운동을 벌인다. 정식 기소돼 벌금 10달러에 법정 비용 4달러를 선고받자 파크스 여사는 즉각 항소하고 인종차별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그때까지 무명이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버스 보이콧을 이끄는 모임의 회장으로 선출돼 본격적으로 비폭력 민권운동을 펼치게 된다.

누구나 공평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킹 목사와 파크스 여사 등 많은 이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 희생을 감수하며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여 쟁취한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오늘날에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이 더 절실해졌다. 무분별한 자가용 이용을 줄이고 친환경 교통수단을 이웃과 공유하며 내가 사는 도시를 더욱 아름답고 편리하게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및 한강 리버버스 도입 등 일련의 대중교통 촉진책을 환영한다. 일부에선 교통요금 인상에 따른 비난을 돌리려는 꼼수라거나 30일간 6만원 넘게 본전 뽑으며 타기 어렵다거나 등등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기후위기 시대 대중교통 이용률 제고다. 미국 LA처럼 대중교통 공짜의 날은 바라지 않는다. 급한 건 기후동행카드에서 배제됐으나 6만원 이상 교통비를 쓰고 있는 경기도와 인천 거주 서울 통근 직장인들이다. 기후동행카드 제1의 수요처인 광역교통망 이용 수도권 주민들을 위해 서울시는 조속히 주변 지방자치단체와 개선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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