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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돌 무더기 위에 오신 예수

장창일 종교부 차장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미국의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부어(1892~1971)가 1932년 쓴 역작이다.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전쟁으로 기록된 1차 세계대전을 보며 니부어는 ‘도덕적 개인이 모인 사회가 왜 악해지는가’란 주제에 집중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순수하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평범했던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벌인 일은 이들의 본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누군가를 죽여야 살아남는 참상 속에서 니부어는 비도덕적 사회의 역설을 봤다. 도덕적 인간이 도덕적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걸까. 저자는 개인의 양심이나 높은 윤리의식만으로 악을 견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악을 막기 위한 사회의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인간이란 항상 최소한의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욕구를 확대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의 필요보다 자신의 필요를 더 절실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다. 모든 사회는 상충하는 욕구들을 역사의 궁극적 목적에 맞도록 조정하는 방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적 수단’을 통한 개인의 이기심 통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치적 수단은 언어적 수사가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무저항을 통해 승리를 얻자고 했던 톨스토이로 인해 러시아 농민이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지적한 그는 오히려 ‘비폭력적 저항’을 앞세운 간디의 직접 행동이 인도를 구했다며 높게 평했다. 이를 두고 이상주의적 결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집단 이기주의의 문제를 언급한 그의 연구 업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도덕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행동을 요구했던 니부어의 주장은 또 다시 터진 세계 각지의 전쟁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에서 초기 교회가 급성장한 배경을 분석했다. 2세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었다. 나와 신의 관계만을 강조한 여타의 종교와는 완벽히 다른 면이 기독교에 있었다.

대단한 의술을 지녔던 갈렌조차 역병을 피해 몸을 피할 때도 기독교인들은 병자와 죽어가는 이들의 곁에 남아 이들을 돌봤다. 시신을 제대로 매장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기독교인들이었다. 초대교회의 급성장 비결은 ‘서로 사랑하라’는 교리를 따른 교인들의 순종에 있었던 것이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의 진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실천하지 않는 우리가 문제일 뿐이다.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에는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예수의 고향인 만큼 오랜 역사의 교회도 있다. 베들레헴에서 가장 오래된 ‘복음주의 루터교 크리스마스교회’는 1893년 세워졌다. 최근 이 교회에 나무 구유 대신 돌무더기 위에 누운 아기 예수 인형이 등장했다. 가장 낮은 구유에 누우셨던 예수가 지금 이 땅에 다시 온다면 폭격 잔해 속에 임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교인들이 만들었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온 걸 기념하는 성탄절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전쟁 중인 전 세계 곳곳에도 어김없이 성탄의 기쁨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만연한 성지에 2000여년 전 평화의 사도로 오셨던 예수의 정신이 남아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웃 사랑을 통해 성장한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에는 우리 삶이 복음에서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닐까.

갈등의 자리에서 평화를 바라며 니부어가 남긴 기도를 꺼내 본다. “하나님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곧 올 성탄에는 허다한 죽음 대신 평화가 깃들길. 메리 크리스마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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