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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뜨락에서] 그 마음 한 조각


1986년 12월 25일. 첫 문장을 쓰다가 웃었다. 어느 뮤지컬에서 ‘1876년 자동차도 없고 라디오나 티비, 영화 다 없던 때였죠’ 가사가 떠올랐다. 왠지 내 시간도 만만치 않을 듯하여 계산해 보니 37년. 내 나이도 생각지 않고 한 50년도 넘은 세월인 줄 알았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흘러간 세월에 고무줄 나이를 제대로 입혔다. 12월이다. 성탄의 추억을 불러들이기 딱 좋은 계절이다. 하나님이 좋아서 가슴을 채웠던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다.

전날에 함박눈이 소복이 내렸다. 골목길 담벼락 밑에는 수북한 겨울꽃이 피었고 각 집 대문 앞은 크고 작은 눈사람이 지켰다. 바람은 강하고 햇살은 힘을 잃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은 녹아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자라났다. 성탄을 맞이하는 허름한 시골교회만 장작 난롯불에 시린 손을 녹이며 장식했던 성탄트리 불빛으로 따뜻하다. 연극, 노래, 율동으로 아기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고 선물을 나누면서 밤을 꼴딱 새웠던 날. 방석을 깔고 교회 바닥에 뒹굴다 깜박 잠들기도 하면서 새벽 송 시간을 기다렸다.

계산리 독자마을이 있다. 그곳 아이들은 섬진강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 구불구불한 버스 길을 40분 정도 걸어서 교회에 왔다. 추위로 인해 무섭게 흐르는 콧물을 옷소매에 닦고 무뎌진 발끝의 감각과 손가락은 아팠지만 새벽 송 길에 웃고 떠들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기도 했기에 성탄의 즐거움은 더욱 컸다.

눈길이 미끄러워 한 시간가량 걸려서 나룻배 타는 곳에 겨우 도착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서둘러 배를 타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배가 보이질 않았다. 선생님마저 당황해서 허둥지둥했다. “종종 있는 일잉께 놀라지 말고잉. 사공을 부르면 나올 것잉게” 독자마을 친구가 말했다. 그 한마디에 불안이 즐거움으로 변하여 새벽의 고요를 깨뜨렸다. 밝고 맑은 목소리가 섬진강을 휘감았다.

“사공, 사공 배 건너 주세요. 사고옹 배 건너 주랑게요.” 열 명의 새벽 송 대원들은 섬진강을 흔들며 사공을 외쳤다. 칼바람의 난도질이었을까. 아니면 곤한 잠이 막아섰을까. 외침이 강을 건너지 못했다. 또다시 시간이 으스스 몸을 떨게 했다. “내가 헤엄쳐 가서 나룻배 가지고 올텡게 다들 기다리고 있어잉.” 불쑥 사촌오빠가 말했다.

우리들의 서사가 절정으로 향했다. 사촌오빠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더니 섬진강 물을 향해 돌진했다. 나룻배 줄을 잡고 발목, 엉덩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강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헤엄쳐 갔다. 스물이 갓 넘은 오빠는 여름 강물을 헤엄치듯 쑥쑥 앞으로 나갔고 흔들리는 배 줄만이 오빠를 알려줬다. 몸은 점점 더 얼음기둥이 되어갔다. 안고 뛰면서 칼바람과 싸웠고 배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워어어이” 오빠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드디어 섬진강의 가장 멋진 뱃사공이 나룻배 줄을 잡고 우리에게 온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강바람은 설렘이었다. 밝아 오는 새벽하늘 아래 섬진강물에서 놀고 있는 나룻배 한 척.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며 헤엄치는 물고기. 오빠는, 사촌오빠는 독자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빠가 우리에게 왔다. 꽁꽁 언 옷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었고 머리카락은 수많은 바늘이 꽂혀 있었다. 딱 한 가지. 가슴만은 뜨거웠던 오빠의 얼굴은 영웅이었다. 그 후로 성탄절이면 사촌오빠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퍼졌다. 새벽 송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를 혼쭐내던 목사님과 집사님들의 호통은 사라진 채로 말이다. 언젠가 사촌오빠에게 질문을 했다. 어떻게 차가운 강물 속에 뛰어들 생각을 했냐고. “이잉,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독자마을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제이잉. 그 마음밖에 없었구만.” 아기 예수님 탄생을 알리고 싶은 그 마음 한 조각이 차가운 겨울 온도를 녹이며 독자마을에 새벽 송을 울려 퍼지게 했다. 사뭇 그 시절 그 마음 한 조각이 그립다.

장진희 그이름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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