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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500클럽’

이성규 산업1부장


최근 용퇴한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전 부회장은 1979년 LG전자에 입사해 샐러리맨 성공 신화를 썼다. 그는 44년 동안 ‘LG맨’으로 살았다. 60대 중견기업 홍보 임원 A씨는 언론계에서 경력을 시작해 대기업과 정부 기관을 거쳐 네 번째 새로운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A씨 역시 40년 넘게 일하고 있다. 공고를 졸업한 B씨는 자동차 생산공장에 취직해 만 40년을 근무하고 2년 전 정년을 맞았다. 그는 퇴직 이후에도 자동차정비공장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근무 분야와 환경이 모두 다른 이들 셋의 공통점은 ‘500클럽’ 멤버라는 것이다. 500클럽은 일생 동안 월급을 500번 이상 받은 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500클럽은 박영수 전 특검 등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인 김만배씨로부터 50억원을 받기로 약속했다는 이른바 ‘50억클럽’만큼의 불로소득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만 41년8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성실히 일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명예로운 자리다. 500클럽은 실력은 물론 건강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하기에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500클럽 탄생 배경에는 1970년대 시작된 고도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매년 10%를 넘나드는 성장률에 기업들은 사람 쓸 일이 많아졌다. 80년대 대학 과사무실에는 대기업 입사원서가 쌓여 있었고,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때 입사한 세대들이 지금 500클럽 멤버로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경제는 2000년대 이후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10년 전부터 정부는 경제의 퀀텀 점프(대도약)를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퀀텀 다이브’(dive·대침체)로 빠지는 모습이다. 경제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진 지 오래다. 기업이 어려워지니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500클럽은 쪼그라들고 있다. 50대만 되면 명퇴 대상에 오르고 청년들은 오랫동안 다닐 건실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국민은 43세에 소득 정점을 찍은 뒤 점차 감소해 61세부터는 적자 인생에 돌입한다. 우리 국민 생애주기 적자 총액(2021년 기준)은 108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11.6% 증가했다. 한마디로 적자 인생이 급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기성세대는 나은 편이다. 미래세대인 청년층은 경험한 아르바이트 종류만 500개가 넘는 또 다른 500클럽을 만들고 있다. 전체 취업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일자리 증가는 대부분 노년층으로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지난해 11월부터 1년째 줄고 있다. 그래서 취업을 포기한 청년 ‘쉬었음’ 인구는 올해 들어 월평균 40만명 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500클럽이 전설로 남지 않으려면 우선 기업이 살아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건강한 구직자가 있어도 일자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난 정부에서 나랏돈을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나섰지만,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를 드러냈다.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질 낮은 단기 일자리로는 500클럽을 부활시킬 수 없다. 그래서 대기업 감세라는 비판이 있지만, 정부는 세제 혜택 등 ‘기업 살리기’에 주력해야 한다. 최근 만난 반도체 전문가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50%를 석권하고 있는 대만 TSMC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도 전 국가적으로 반도체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만약 삼성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따라잡으면 또 하나의 삼성전자가 생기는 셈이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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