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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

우성규 종교부 차장


대구는 푸른 담쟁이, 청라(靑蘿) 언덕에서 시작한다. 선교사 주택이 있던 언덕을 출발해 대구제일교회, 옛 동산의료원, 신명학교, 계성학교를 거쳐 선교사들이 세운 한센병 수용시설 대구애락원에 이어 사문진 나루터까지 서쪽으로 가는 것이 제1길이다. 제2길은 청라 언덕에서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을 거쳐 약령시장을 지나 남쪽으로 향한 뒤 풍각제일교회, 사월교회, 경산교회, 메노나이트 선교지 등을 지나 영남신학대에 이르는 코스다.

제3길 역시 청라 언덕에서 시작해 성주, 칠곡, 왜관을 거쳐 김천 송천교회까지 이르고, 제4길도 청라 언덕에서 출발해 영천, 군위, 의성을 거쳐 안동의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 성소병원과 안동교회를 찾는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길을 만들고 있는 전재규 대신대 명예총장은 “교회 학교 병원 등을 세운 복음의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건국을 이룬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는 양림동 유적 가운데 오방 최흥종 기념관에서부터 걷기 시작하면 좋다. 최흥종 목사는 정욕, 물욕, 권력욕, 명예욕은 물론 종교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종교욕마저 버린다는 뜻에서 호를 오방(五放)이라고 지었다. 50대 나이에 세상과 교회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친구와 친지들에게 본인의 사망통고서를 보내고 무등산에 들어가 병으로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기도와 말씀 공부에 전념했다.

최흥종 기념관 바로 위엔 유진 벨 선교기념관, 아래 쪽엔 오웬기념각이 있고 언덕 꼭대기 호남신학대 안에는 엘리자베스 셰핑(서서평) 선교사 등의 묘지가 있다. 산지에서 내려와 광주천을 건너면 옛 전남도청으로 이어진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숨결이 담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만나게 된다. 광주에서 길을 만들고 있는 길종원 조선이공대 건축과 교수는 “믿는 이들에게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겐 선교사들의 헌신을 알게 하는 길”이라고 소개했다.

전남 순천은 순천중앙교회에서 시작한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의 이름을 딴 조지 와츠 기념관, 프레스턴 가옥, 안력산 병원터에 이어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까지 언덕 전체가 순례길 코스로 개발돼 있다. 이른 봄엔 특별히 매화 향기 가득한 100년 역사의 홍매가헌(紅梅佳軒)도 걷는 길에 포함된다. 홍매가헌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김형재 목사가 지은 집으로 지금은 김 목사의 손자인 김준선 순천대 명예교수가 살고 있다. 미국 의료선교사 존 알렉산더를 음역한 안력산 의료문화재단 이사장 서종옥 위앤장서내과 원장은 “복음 교회 의료 묵상 등을 테마로 하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건 최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한국순례길 주최 근대 기독교 역사문화자원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다. 한국순례길은 사단법인으로 천혜의 자연과 영성 깊은 종교적 자원 그리고 역사 유적이 어우러진 길을 조성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걷기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이달 초 베트남 의료선교 중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이 이사장을 맡아 방방곡곡의 기독교 문화유산 찾기에 힘써 왔다.

박 원장은 생전 “아름다운 늦가을, 서울의 정동길만 걸어도 선교사와 신앙 선배들의 발자취가 눈에 선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아련하고도 가슴 깊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가 이 땅에 자리한 지 1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서울의 근대 유적조차 제대로 가꾸지 못해 선조들께 죄송하고 다음세대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방랑자에서 순례자로 거듭나는 것이 신앙이다. 한국교회 첫사랑을 회복하는 순례길 여정이 계속해서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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