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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샘] 몸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모인 공동체의 ‘중심’이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칭한다. 인간의 몸을 설명할 때 막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딘지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머리, 심장, 허리 등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람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 아닐까?

평소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때 우리는 몸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어떤 아픈 곳이 생기면 그 상처 부위가 “아프다”고 하루 종일 호소한다. 새끼손가락 끝에 난 조그만 상처도 그 자리가 아물기까지는 내내 고통의 신호를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비유는 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족 중 일원이 아프면 온 식구들이 함께 염려한다. 사회나 국가에서도 재난을 당한 이웃들이 생기면 함께 염려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 ‘아픈 곳’과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연결하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 하나님은 늘 우리가 아파할 때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다”는 진리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후 두려워 숨어있을 때(창 3:8)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말을 걸어오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고난 겪을 때 하나님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이 땅에 오신 삼위일체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펴시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를 읽으시며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다.

죄의 사슬에 묶여 고통당하는 우리를 위해 주님은 시험을 받아 고난 겪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염려하셨다.(히 2:18, 4:15) 그리고 우리 주님은 사망에 눌려 있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부활하시고 우리를 위한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히 11:16)

이처럼 우리 주님은 역사 속에서 우리의 ‘아픈 곳’에 늘 함께하셨다.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하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이 땅에서 ‘아픈 곳’에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

지금 수해로 고통당하고 더위로 힘겨워하는 이웃들이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깨어지는 수많은 가정의 아픔을 본다. 지구 공동체 내 전쟁 소식을 통해 매일 수많은 죽음의 소리를 듣는다.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바다와 사막에서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난민을 본다. 세상 처처에 이처럼 ‘아픈 곳’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어 주셨다. 주님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3)이시다. 그래서 우리의 아픔이 무엇인지 아시고 지금도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것이다.(요 14:16)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마 28:19)라고 말씀하신 주님, 이는 “아파하는 모든 이웃과 함께하라”는 말씀과 다름 아닐 것이다. 아파하고 상처 난 곳을 먼저 찾아가시고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기다리시는 곳. 그 자리가 바로 사랑의 기적과 새 생명의 소망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유경동 목사 (감리교신학대 기독교윤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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