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 1년 동안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비율이 7%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정부에서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이 30% 안팎에 달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치다.
정치권에서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가장 바쁘게 돌아갔어야 할 국회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온다.
‘여소야대’ 국회 지형 속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사태, 이태원 참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 굵직한 국면마다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인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적어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와 민생 관련 법안에 관해서는 정쟁을 멈추고 협치를 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저조한 법안 통과율…민생법안 발 묶여

국민일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의 의안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 윤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3월 1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1년간 접수된 4965건의 의원 발의 법안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361건(7.27%)에 불과했다. 100건 중 7건이 겨우 국회 문턱을 넘은 셈이다. 361건은 원안 가결, 수정안 가결, 대안에 반영되면서 폐기된 법안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지난 1년간 국회 입법 성적은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편이다. 문재인정부 때는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이 28.42%(2만9587건 중 8410건 통과)였다. 박근혜정부와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각각 34.81%(1만7483건 중 6086건 통과), 35.23%(1만4523건 중 5116건 통과)로 더 높았다. 윤석열정부 임기가 아직 4년 더 남았지만 이전 정권의 법안 통과율에 근접하려면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의 국회 통과율 역시 저조하다. 윤석열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난해 5월 1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10개월 사이에 정부 발의 법안 136건 중 통과된 법안은 28건(20.59%)에 그쳤다. 이에 비해 문재인정부 시절 정부 발의 법안의 통과율은 61.48%(1202건 중 739건 통과)였고, 박근혜정부와 이명박정부 때는 각각 72.05%(1152건 중 830건 통과)와 78.03%(1994건 중 1556건 통과)에 달했다.

이 같은 협치 실종에 따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의원 및 정부 발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 윤석열정부 주요 국정과제 법안 282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감염병예방법, 지방세특례제한법, 정부조직법 등 74건에 그쳤다.
특히 민생과 직결된 국정과제 법안 상당수는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재난 피해를 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들만 따져 보면 밀린 임금을 지급하려는 사업주가 경영상 어려움을 증명하지 않아도 정부에 융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임금채권보장법,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아동 친화적 증거보전 절차를 신설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등이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사회적 약자 보호 강화를 위한 스토킹처벌법과 전세 사기 방지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민생과 관련 깊은 법안들이 여야 견해차가 별로 크지 않은 데도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협치할 의지나 역량이 있느냐 지적도
여당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탓한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새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민주당의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모든 법안을 이념적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선 여당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야당이 169석의 과반 의석수로 사사건건 여당 발목을 잡는다”며 “쟁점 법안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공약했거나 국정과제로 삼은 주요 법안에 대해서 죄다 태클(방해)이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은 “여당이 총선에만 관심이 있다”고 반박한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일은 하지 않고 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을 고집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도 “여당은 계속 전 정부 탓, 민주당 탓만 하면서 국민의 삶보다 정략적인 판단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서로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여소야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협치 의지가 없다”며 “야당이 도와주지 않으면 예산안 통과도 어렵고 개혁 입법도 멈춰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이재명 대표 사법 처리 문제와 국회 협치 문제를 ‘투 트랙’으로 분리해서 영수회담을 하자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다수당인 야당 역시 발목을 잡는다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정부 발의 법안 통과율이 낮다는 게 바로 그 증거”라며 민주당도 정쟁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문제의 해법은 명확하나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처럼 각 당 원로나 원내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서로 만나서 조율하는 게 안 되는 상황”이라며 “협치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럴 상황이나 역량이 안 되는 것 같다. 22대 총선 전까지 협치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구자창 이동환 박성영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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