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정수리(51)씨는 여행용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공항용 카트에 짐을 싣고 있었다. 출국을 기다리는 여행객 모습과 얼핏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정씨는 5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공항 노숙인’이다.
그는 “일본에 정착하려고 갔다가 돈을 다 잃고 이곳으로 왔다. 24시간 안전하게 있을 곳은 인천공항뿐이었다”며 “서울역 길바닥에서 자보기도 하고, 버스터미널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노숙인 자활시설 ‘내일을여는집’ 사회복지사들은 인천공항을 찾아 정씨를 비롯한 노숙인들을 상대로 방문 상담을 벌였다. 이들은 한 달에 1~2회 공항 노숙인들을 찾아 음식과 생활 물품을 제공하고, 살 곳과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날 만난 노숙인 4명은 다시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정씨는 고시원을 제공해주겠다는 복지시설 제안에도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데 사람들이 두렵다”며 “가족은 아무도 없다. 나는 난민 같은 신세”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박덕인(46)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코로나19 유행으로) 공항 대합실에 사람들이 없다 보니 노숙인들이 늘었었다”며 “코로나 방역 해제 이후 공항에 왕래하는 이용객이 늘어나자 최근에는 노숙인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하루 평균 1만명대로 떨어졌던 공항 이용객은 올해 14만명까지 늘어났다. 코로나 이전 대비 70% 수준이다.
문제는 공항을 벗어나면 더 열악한 노숙 생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씨는 “자활시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잡는 이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이곳을 떠나 길거리로 나서면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크고, 건강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씨가 3년째 이곳에서 만나던, 조현병 증세를 보이던 한 50대 여성은 최근 일부 버릴 짐만 남겨둔 채 자취를 감췄다.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있던 중국 국적의 진모씨는 사회복지사에게 “다음달에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 코로나가 풀리면 곧 중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사는 “진씨는 만날 때마다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하지만 막상 제안하면 항상 ‘다음에 해 달라’며 피하곤 한다”고 전했다. 처음 공항에 나타났을 때와 달리 진씨는 이제 허리띠를 꼭 조여도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로 마른 상태가 됐다.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거리 노숙과 달리 공항에서는 이용객들에게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통 등을 뒤져 음식을 찾는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공항 이용객의 물건을 훔치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며 “노숙인이 문제를 일으킬까 주시하고 있지만, 이들을 관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 문제는 주거지와 일자리만 제공해준다고 해결될 수 없고, 개별적인 문제를 파악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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