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보상받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손해보험업계가 손실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보상 심사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손보업계는 의료 자문제와 본인 부담 상한제를 악용하며 가입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7년 DB손해보험(당시 동부화재)에서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한 50대 A씨는 지난해 11월 한 서울 시내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다음달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현미경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DB손보로부터 지급을 거부당했다. A씨는 해당 병원으로부터 “백내장 진단 후 사진을 즉시 폐기해 줄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위임장을 써줄 테니 병원에 확인해보라”고 했지만 DB손보는 이조차도 거부한 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DB손보는 A씨에게 “우리와 계약을 맺은 자문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오면 보험금을 주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미지급 사례는 증가 추세다. 올 상반기 실손 보험금 미지급 건수는 6만8100건으로 전년 동기(6만3400건) 대비 7%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약관상 면·부책’(약관상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한 미지급이 5만3600건에서 5만9500건으로 11% 넘게 증가했다. 보험 사기로 인한 미지급은 500건에서 800건으로 60% 대폭 증가했다.
실손보험금을 받기는 어려워지는 반면 보험료 증가세는 가파르다. 2019년부터 내년(예상치)까지 실손보험료 평균 인상률은 10%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보험 사기 근절을 앞세워 손보업계 손을 들어준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올 상반기 보험 사기 예방 모범 규준을 개정해 ‘치료 근거 제출을 거부하거나 청구 내용 신빙성이 떨어지는 경우’ 등 다섯 가지를 보험금 지급 심사 조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후 각 손보사는 이런 금감원 규준을 바탕으로 자체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손보업계는 의료 자문제를 악용해 자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의료 자문이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입자의 질환이나 치료 내용에 대해 전문의 소견을 듣는 것이다. 보험사가 사기를 걸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지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올 상반기 의료 자문을 거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건수는 KB손해보험(796건), DB손보(497건), 현대해상(482건) 순으로 많았다.
본인 상한 부담제 역시 보험사들이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본인 상한 부담이란 비급여 진료비 등을 제외한 본인 부담금 총액이 상한액(올해 기준 81만~580만원)을 넘는 경우 초과분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하는 제도다. 애초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가가 만든 제도지만 손보업계는 “본인 부담 상한에 따라 건보공단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치료비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며 악용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손보업계는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2000만명에 육박하는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를 보험료 인상과 깐깐한 심사로 압박한 뒤 손보업계에 유리하게 설계된 4세대로 ‘갈아타기’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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