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A씨의 남편 B씨가 정당한 사망보험금을 지급받기까지 1년 넘게 걸린 이유는 손해사정제도 때문이었다. 25일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등에 따르면 B씨는 올 1월 현대해상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고, 현대해상에서 위탁한 손해사정 법인은 현장심사를 진행했다. 현대해상은 지난 3월 보험금의 40%만 지급할 수 있다고 통지했다. 손해사정 결론은 A씨가 약관상의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보험사는 A씨가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월 2~8회 일용근로를 했다는 점을 근거로 A씨가 일용근로직으로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했고, 이를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직업’을 ‘생계유지 등을 위해 일정한 기간(6개월 이상)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유족 측은 현대해상에 반박 내용을 보내고 소비자보호원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소비자보호원은 같은 달 현대해상에 A씨의 근로가 생계와 관련 없는 일회성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A씨와 B씨의 통장 내역 등을 제출받으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B씨는 현대해상 측으로부터 6개월간 이 같은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 B씨는 국민일보가 현대해상에 입장을 요구했던 이달 14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이 내용을 안내받았다. 결국 보험사는 서류 보완을 통해 보험금 100% 지급이 가능했음에도 지급 규모를 줄였다가 뒤늦게 다시 늘린 꼴이 됐다. 두 달간 진행했던 손해사정은 보험금 삭감 근거를 마련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에 현대해상은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건이었지만 민감 정보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에 시일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보험산업의 신뢰 유지 측면에서 손해사정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핵심이지만 현행 제도는 보험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보험 민원 중 손해사정 관련 민원은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우선 손해사정사 위탁이 보험사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 위탁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보험사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손해사정사를 고른다. 2019년 기준 보험사가 손해사정사를 직접 고용하거나 자회사에 위탁하는 경우가 83%에 달한다. 비자회사에 위탁하는 경우는 17%에 불과하다.
게다가 독립 손해사정사에 업무가 위탁되더라도 손해사정사의 성과를 측정하는 주요 지표는 보험금 삭감이 대부분이다. 한 손해사정사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사유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보험사와 거래를 이어가려면 보험 청구액을 삭감하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손해사정 절차에서 보험사와 손해사정사가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법적규율을 위반했을 시 제재 근거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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