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사실상 장기금리를 인상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예상 밖의 금융완화 축소로 해석된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20일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친 뒤 10년물 국채 금리를 0%로 유도하되, 변동 폭을 기존 ‘±0.25% 정도’에서 ‘±0.5% 정도’로 확대해 이날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일본 통화정책의 기조 전환으로 이해된다. 일본은행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빠르게 금리를 올리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상황에서도 경기 회복을 위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다만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시장 예상대로 -0.1%로 동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장기금리가 그동안 변동 폭 상한선(0.25%)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번 조치가 사실상 금리 인상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3월 장기금리 변동 폭을 ±0.2%에서 ±0.25%로 넓힌 이후 1년9개월 만이다. 일본은행은 또 장기국채 매입 규모를 내년 3월까지 1개월에 7조3000억엔에서 9조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장기금리 변동 폭을 확대한 것은 급격한 ‘엔저’(엔화 약세)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타격을 받자 이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엔화는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초저금리 정책 고수로 수개월째 약세를 보여왔다. 미·일 간 금리 차 확대로 엔·달러 환율은 지난 10월 21일 달러당 151엔대 후반까지 올라 사상 최저 수준의 약세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 선을 넘은 것은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이었다.
엔저로 수입 물가에 부담이 커지면서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 오르며 40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은행 발표 뒤 일본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장기금리는 오후 한때 0.460%까지 상승했으며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37엔대에서 133엔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225)는 2.46% 하락 마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10년 가까이 추진해온 ‘아베노믹스’(대규모 금융완화·초저금리 정책)를 내년 4월 이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집권한 직후인 2013년 1월 정부와 일본은행이 발표한 공동성명을 처음으로 개정할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