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현대미술 사립 1호 토탈미술관을 구하라


토탈미술관의 진가를 확인한 건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를 취재하러 갔을 때다. 기후위기, 난민, 여성, 장애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속 등 마이너리티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대두된 가운데 독일 여성 작가 히토 슈타이얼이 화제였다. 여기저기서 ‘히토, 히토!’를 말했다. 겨우 두 달 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언덕배기 토탈미술관 기획전에 소개된 외국 작가 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려졌다는 게 퍼뜩 기억났다. 태국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독일의 미디어아티스트 파룬 하로키,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게리 힐 등 동시대 미술에서 뜨겁게 조명받는 작가들이 총집결한 전시였다. 그때 알았다. 굳이 베니스에 가지 않아도 토탈미술관 전시만 챙기면 세계 현대미술 무대에서 잘나가는 작가는 다 알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토탈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나라 1호 사립 미술관이다. 미술 애호가인 문신규 노준의 부부가 1976년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시작했고, 경기도 장흥 시대를 거쳐 92년 현재 자리에 건물을 신축해 평창동 시대를 이어 간다.

토탈미술관 전시는 대중보다 두 발 앞서간다. ‘쌓아올린 오브제’로 유명한 영국 조각가 토니 크랙, 스페인의 백남준급 미디어아티스트 안토니 문타다스,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 등 거장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보다 먼저 소개됐다. 2007년 제임스 터렐 개인전만 해도 일반인은 안 와도 일본 나오시마를 구경 간 덕분에 명성을 아는 재벌 사모님들은 다 알고 다녀갔다고 한다. 노 관장은 “앞서가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곳 국제 기획전은 광주비엔날레 초창기에는 외국 작가들이 버스까지 대절해서 보고 가는 필수 코스였다. 이영철 이원일 신보슬 등 큐레이터들의 역량이 어우러져 시너지효과를 냈다.

그랬던 토탈미술관이 3년째 전시에 손을 놓고 있다. 정확하게는 돈이 덜 드는 교육과 커뮤니티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리움, 롯데뮤지엄 등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아닌 이상 사립 미술관은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보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 지원사업에 공모해 전시를 하게 된다. 정부 지원은 ‘공정’을 의식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강하다. 6000만∼8000만원 지원해주고 전시를 2개 이상 하는 걸 조건으로 내건다. 외국 작가까지 초청해 제대로 된 전시 하나를 보여주는 게 낫지만 모든 걸 수치로 평가하는 정부는 ‘다다익선’만 외친다. 토탈미술관의 강점인 외국 작가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다 보니 전시를 할수록 출혈 지출이 되는 구조가 됐다. 땅까지 팔아가며 전시를 해 왔다는 걸 미술계 사람들은 안다. 이제는 미술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강행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술 환경은 변했다. 대기업 미술관이 줄줄이 생겨났고 지역에서는 군 단위까지 공립 미술관이 경쟁적으로 선다. 과거에 사립이 하던 일을 공립이 대체하니 사립 미술관은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공립은 한계가 있다. 현대미술은 실험적이고 발랄하다. 정부와 기성의 권위에도 도전해야 한다. 그런 미술이 공립 안으로 들어가면 색깔을 내기 힘들다.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사립 미술관을 후원하는 것이 건물만 번듯한 공립 미술관을 짓는 것보다 100배 낫다. 미술계 인사는 “기존 사립 미술관이 공공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면 그게 공립 미술관에 준하는 거 아닌가. 소장품도 있고 평판도 좋은 사립 미술관을 지원해서 어떻게든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 예산 낭비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한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남 고성군 탈박물관, 김해시 인도박물관 등 유물을 기증하는 대신 박물관 운영은 계속하는 사례들이 있다. 토탈미술관이 전시의 전설을 계속 만드는 걸 보고 싶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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