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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예수] 성경 현장에 선다는 건 벅찬 감동… “예수님이 하셨구나” 느낄 것

20여년 성지순례 안내자로… 성경현장연구소 김상목 소장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 20여년 동안 성지순례를 안내해 온 김 소장은 "성지순례의 목적을 분명히 세우고 출발 전 충분한 사전 학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성지전문가 김상목(60) 성경현장연구소장은 충남 공주시 탄천면의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김 소장 집안은 대대로 교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김 소장 위로 딸만 4명이 태어나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며 장독대에 물을 떠 놓고 기도를 하곤 했다 한다. 김 소장이 교회에 처음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도둑님’ 때문이었다.

외로운 소년에게 피난처가 된 교회

김 소장 부모님은 교육열이 남달랐다. 누나들을 모두 공주 읍내로 유학을 보냈고 김 소장도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71년 누나들이 살던 곳으로 올라왔다. 김 소장은 “춥고 눈 오던 날 아버지 손을 잡고 공주 읍내 누나들의 자취방에 왔다”면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시고 누나들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때 혼자 남겨져 외롭고 쓸쓸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님을 떠나 누나들과 생활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이 엉망이었다. 어린아이가 봐도 도둑이 든 게 분명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날 이후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놀다가 해가 지면 집 근처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혼자서는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것도 무서웠다. 전에는 몰랐지만 중고등학생이던 누나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결국 누나들이 있는 공주침례교회 앞마당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부터 ‘누나들이 안에서 뭐 하나’ 하는 호기심에 예배당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곤 했다. 그러다 누나들의 권유로 교회 주일학교에 참석하면서 김 소장의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김 소장은 “그 도둑님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분이 나를 교회로 인도하신 셈”이라고 웃었다.

수줍음 많던 소년에게 스며든 신앙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처음에는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찬양이나 율동은 엄두도 안 났고 성탄절마다 하는 성극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경공부만은 열심이었다. 김 소장은 “당시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정말 열심히 가르치셨다. 구원에 대한 확신, 신앙고백, 영접 기도 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면서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뒤 구원에 대한 의심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이던 70년대는 한국교회가 뜨겁게 부흥하던 시기였다. 100만명 이상 모여 회개 기도를 드리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집회가 열린 것도 이때였고, 기도를 통한 성령 체험을 강조한 기도원도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이 시절이었다. 김 소장은 “교회에서 봄가을 2차례 열리던 부흥성회를 빼놓지 않고 참석했고, 특히 기도원으로 가는 여름수련회는 귀한 시간이었다”면서 “성경도 배우고 부흥 집회도 하고,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운명처럼 선택한 신학대

어린 시절부터 김 소장의 꿈은 큰 목장을 갖는 것이었다. 인생 진로가 바뀐 것은 담임목사님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둘째 누나가 운영하는 수예점에 심방 오신 담임목사님은 예배를 마친 뒤 그냥 지나가듯이 “상목이 너 목사 되지?”라고 하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 이후 이 말씀은 김 소장을 사로잡았다. 김 소장은 “학창 시절 정말 열정적이고 믿음 좋은 훌륭한 전도사님들을 만났다”면서 “자연스럽게 그분들을 보면서 신학대 쪽으로 마음이 굳어져 갔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진로에 대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공부도 잘했던 아들이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전기 대학에 원서는 넣어 봐라. 안 되면 신학교에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으셨다. 김 소장도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김 소장이 입학한 침례신학대학교는 후기 대학이었다. 그는 “전기 입학원서 접수 기간 내내 아는 분이 있던 제주도로 피신했었다”면서 “유혹에서 벗어나겠다는 결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성지에 빠진 신학생

신학생 시절 김 소장은 “성경에 대해 바로 알고 해석해서 설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하나로만 알았던, 하지만 다양한 성경 해석과 신학적 관점을 접하자 혼란을 겪으며 방황했다. 김 소장은 “신앙 자체에 위기를 맞거나 시험에 든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방황의 시기를 벗어나기 위해 2학년 때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도피하듯 간 군생활도 허투루 보내게 하시지 않았다. 김 소장은 “힘들 때마다 요소요소에 의인을 통해 문제없이 군생활을 마치게 하셨다”면서 “힘든 군생활은 나중에 유학 중 겪었던 고난을 버텨낼 힘이 됐다”고 전했다.

제대 후 이스라엘 땅, 성지(聖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선배들의 영향이 컸다. 구약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몇몇 선배들은 이스라엘에서 공부한 교수님을 모시고 특별 세미나를 자주 열었다. 이후 그중 2명이 실제 이스라엘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분들은 김 소장에게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고 놀기만 해도 공부가 된다”며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유학을 권했다.


김 소장은 대학 졸업 후 88년 무작정 이스라엘로 향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돌아왔다. 영어도 히브리어도 못 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언어부터 공부하겠다며 영어사전을 외우며 때를 기다렸다. 그때 마침 미국 유학 중인 선배의 소개로 알게 된 미국 리버티신학대학원에서 5년을 공부한 뒤 93년 다시 이스라엘에 재도전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한 예루살렘대학(JUC)은 성서 지리에 탁월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6년 동안 지리, 역사, 고고학, 성경 배경 등을 배웠다. 이스라엘에서의 공부법은 미국과 달랐다. 강의실에서 배웠던 것은 바로 현장에 나가 확인했다. 이스라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김 소장은 “성경 사건이 펼쳐진 현장에 우뚝 서본다는 것은 참 놀라운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김상목 소장이 2018년 유대 광야를 가로지르는 기드론 골짜기 절벽에 세워진 마르 샤바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김 소장은 그해 5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머물며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성경 사건의 현장과 고고학 발굴 장소들을 집중 답사했다. 아래 사진은 동행한 성경 현장 답사팀에 아라드 성채 안 성소 뜰에서 발견된 번제단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김 소장은 유학 중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객을 종종 안내하기도 했다. 여행사 일정에는 없는 장소에 잠시 멈춰 성경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소개했다. 한 성지순례객이 김 소장 앞을 지나가며 한숨처럼 내뱉었던 “사실이네”라는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 소장은 “한국의 성도들은 성경을 텍스트로만 대하고, 성경 현장을 상상하지만 실체가 없는 막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그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고백했다.

‘현장’이 있는 성지순례를 꿈꾸다

이스라엘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즈음 외환위기가 터졌다. 유학생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버티던 김 소장도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귀국 당시 막 설립된 21세기목회연구소와 인연이 닿았다. 연구소는 실용목회를 추구하는 연구기관이었다. 김 소장은 연구소에서 이스라엘에서 배웠던 것들을 어떻게 실용목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게 지도와 매뉴얼을 성경 현장에 접목한 BTBL(Back To the Bible Land)이라는 이름의 성경현장답사 프로그램이다.

BTBL 프로그램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의 성지순례를 안내했던 김 소장은 2020년부터 독립해 ‘성경현장연구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김 소장은 “성지순례를 돕는 단순 안내자 역할을 넘어 사역으로 삼겠다는 뜻”이라며 “사역의 마음으로 현장에 가면 함께한 분들도 현장을 이해하고 현장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성지순례를 안내하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예루살렘 눈물교회에서 성전산을 보며 설명하는 도중에 나이 지긋한 목사님이 계속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다. 그 목사님은 “은퇴 기념으로 성지순례를 왔는데 지금 보고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그동안 너무 잘못 알고 가르치고 설교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제야 은퇴를 맞아 왔다고 생각하니 그저 눈물이 흐른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꼭 한번은 성지순례를 가봐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김 소장은 “우리 크리스천은 평생 성경을 읽고 배우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성경을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삶는다”면서 “하지만 성경은 당시의 문화가 녹아 있는 문자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자칫 성경 속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성경을 잘못 읽거나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크리스천들의 성지순례는 기념교회에서 사진만 찍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소장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여행사가 모든 일정을 주관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현지에 가서 누가 안내하는지도 모르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그는 “보통 교회 단위로 성지순례를 진행하는 만큼 무엇보다 담임목사님의 성경 현장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출발 전 성지순례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충분한 사전 학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이 성경 현장을 보면서 결국 깨닫는 것이 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구나’라는 결론이다. “전에는 모세, 아브라함 등 인물이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그들보다 하나님이 먼저고 예수님이 먼저라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분이 가장 존귀하고 그분만이 의지할 분입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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