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후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 15곳 중 10곳의 주가가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소각 호재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거시 경제 환경 악재가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이후 자사주 소각 결정을 공시한 기업은 15곳이다. 이들의 소각 공시 전 거래일 주가와 이날 종가를 비교한 결과 10곳의 주가가 떨어졌다. 평균 하락률은 1%다. 3월 이후 코스피지수는 2.87% 떨어진 것에 비하면 선방한 셈이지만 예전만큼 호재로 작용하지 않았던 셈이다.
15개 중 주가가 10% 이상 내린 기업은 2곳이다. 게임업체 펄어비스는 중국 시장에 야심 차게 내놓은 ‘검은사막 모바일’ 게임의 매출이 부진하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지난 2일 주주가치 제고 및 주가 안정을 위해 자사주 약 1300억원어치(198만6645주)를 소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시 전 거래일인 지난 1일 6만8200원이었던 보통주 가격은 이날 14.81% 내린 5만8100원에 마감했다. 컬러장판 제조업체 디씨엠 역시 주가가 -15.46% 떨어졌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2일 설립 이래 처음으로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지만 주가는 4만8050원에서 현재 4만6200원으로 3.85% 내려온 상태다. 미래에셋증권도 자사주 약 2000억원어치를 소각했지만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가가 오른 곳은 모트렉스(26.84%) 신한지주(5.92%) 한국철강(4.61%) 등 5곳 뿐이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자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소각하는 것으로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고 주주 이익을 꾀할 수 있다.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메시지도 시장에 던질 수 있다.
자사주 소각에도 주가가 떨어진 것은 거시경제 전반이 위축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올해 초부터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각국의 긴축 우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 악재가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다만 자사주 소각의 효과가 반감되더라도 가장 확실한 주가 방어 수단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는 커질 전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이미 매입해 놓은 자사주가 있다면 주주들은 소각 요구를 할 것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하는 라이프자산운용은 최근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냈다. 최근 카카오 등 기술주에 투자한 개미들은 “기업 활로를 찾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며 자사주 소각을 촉구하고 있다.
임송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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