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가와 마찬가지로 ‘목사’라는 직무도 일종의 권력을 부여받는다.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에 대한 지배에 참여하고 있고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보통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은 하찮은 직업 정치가뿐만 아니라 거룩한 성직으로 부름받았다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권력이 공동체로부터 위임됐다는 사실을 목회자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공동체로부터 부여받은 권력(권위)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곧 목회자의 윤리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소위 ‘자질’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내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자질은 목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와 이 대의를 명령하고 규정하는 주체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다. 대의에 대한 열정은 선과 악, 양극단에서 비롯된다. 그 때문에 이 열정은 언제나 하나님, 아니면 악마라는 둘 중 하나를 향한 헌신을 뜻하고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로 하자면 “인간은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 놓여있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중 하나가 인간에게 올라타는 순간 거기서 불같은 열정이 생겨난다.
이 열정을 ‘신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지만 충분하지 않다. 단순히 신앙적 열정만 가지고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빨리 돌려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목회자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 헌신과 함께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런 책임의식이 목사의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균형감’이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균형감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하고 공동체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균형감각은 일종의 ‘안목’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데 이런 안목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는 후천적으로 길러지고 함양된다. 이를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른다. ‘목사가 책을 많이 읽고,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바로 이 균형감의 중요성 때문에 나온 말이다.
24시간 기도만 하고 불 받는다고 균형감이 길러지는 게 아니다. 혼자 거룩하다고 고상한 체하다간 균형감이 무너지기 딱 좋고, 결국 사물과 사람에 대한 거리감을 상실하고 만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 공동체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자의 가장 큰 죄에 속한다. 특별히 우리에게 유혹이 되는 돈, 부정적 의미의 정치적 이익 관계 그리고 혈연 학연 지연에 따른 인간관계가 행동 판단의 기준이 될 경우 그것은 거리감이 상실됐다는 가장 큰 신호이다. 거리감이 상실된 경우 정치든 목회든 필연코 무능의 길로 빠지게 돼 있다.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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