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입법 공백 상태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어 일선 병원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한쪽에선 현 상황을 공고하게 하려고 낙태 시술에 국민건강보험 전면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의원 입법 발의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 적용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게 있다. 태아의 생명권이다.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를 도외시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무분별한 입법경쟁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계기관과 국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낙태죄 전면폐지 또는 일부개정 주장에 대한 각 논거와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전부, 혹은 일부 법률개정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 입법을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채 1년 8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헌법상 생명권이나 형법의 낙태죄를 근거로 문제 제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민법상 태아 지위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두 차례에 걸쳐 판례를 중심으로 진단한다.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선언한다. 원칙적으로는 태아에 대해 민법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태아의 권리를 선언하는 규정이 있다.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제762조 규정과,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제1000조 규정이다.
학술적으론 아직 출생하지 않은 태아가 권리를 취득하는 시기에 대해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 관계없이 민법은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태아 당시 취득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살아서 출생했을 경우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법원은 손해배상의 일종인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에 대해 피해 당시 정신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장래 감수할 것임을 현재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우 그 청구를 실제로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93다4663 판결)
뿐만 아니라 법원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태아의 손해를 인정하기도 한다. 임신 5주 3일 차에 임신을 진단받고 정기적인 산전 진찰을 받던 산모가 출산을 앞두고 대학병원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겨 출산하다가 아기를 사산하게 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산모는 임신 37주 1일 차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가 건강하다는 소견을 받았으며, 임신 40주 차에 유도분만을 진행해 주기적인 진통까지 있었다. 재판부는 태아가 출산 직후 사망하게 된 것이 담당 의사가 무리하게 조기분만을 실시한 과실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때 재판부는 “민법의 해석상 사람의 출생 시기를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한 때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원용하면서 다만, 전부노출설을 취하면 이미 분만이 개시된 태아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치하거나 의료과오를 감추는 수단을 조장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태아의 수정·성장 및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분만이 개시된 단계에 이른 태아는 그 생명적 가치나 보호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출산을 마친 신생아 못지아니한 점’ 등을 고려했다.
그래서 재판부는 “의료과오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 출산을 마친 직후 사망한 신생아의 손해에 대한 법적 평가액을 아울러 참작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서울고법 2006나56833 판결)
비록 출산 직후 사망함으로 인해 신생아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직접 행사할 권리는 없지만, 그에 상당한 손해 자체는 인정하고 이를 부모의 위자료에 참작해 산정하도록 판결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대한민국 법은 기본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법체계가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를 일부라도 비범죄화한다면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법률 쟁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부분을 완전히 외면한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고 싶다면 최소한 이로 인해 파생할 문제들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문제를 보완할 방안을 모색하고 법 개정을 진행하는 게 순리다.
만약 중요한 쟁점은 피하고 특정 인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을 우선적으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견됐던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것이고 후속 입법으로 땜질 처방할 것이다.
그런데도 낙태 옹호·조장세력은 여성 생명권, 재생산권, 임신중단권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약자 중의 약자인 태아의 생명을 담보로 한 선동을 제발 멈추길 바란다.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①낙태죄 폐지됐다고?… 중한 벌에 처해질 수 있어
▶②인권 대변한다는 국가인권위… 태아 권리·생명권 인정 안해
▶④‘인권’ 외치면서… 태아 생명엔 최소한의 보호도 없다니
▶⑤낙태행위…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 물어야
▶⑥태아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 목회자는 ‘낙태=죄’ 선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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