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5일 오후, 당시 21세이던 박준호(사진)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세월호에 혼자 탑승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그의 버킷리스트에는 전국일주가 있었고, 배를 타고 제주에 가는 건 그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준호씨의 소박한 꿈은 승선 12시간 만에 트라우마로 변했다. 그는 가까스로 세월호를 빠져나온 172명의 구조자 중 한 명이다. 지난 14일 경기도 김포에서 만난 준호씨는 세월호 이후 밟아온 6년의 인생 여정을 국민일보에 처음 털어놨다.
세월호에서 간신히 구조된 준호씨의 삶은 이후에도 힘겨운 날의 연속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존자 박준호’라는 이름을 허락도 없이 사용했고, 연락 한 번 없던 사람들이 SNS에 ‘준호는 잘 지내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급기야 유튜브에서는 ‘세월호 생존자 박준호입니다. 같이 위로해주세요’라고 사칭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술자리에서 “네가 그때 죽었으면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겠지”라는 말을 내뱉은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준호씨가 택한 방법은 자원입대였다. 모두 피하고 싶어 한다는 수색대대에 지원했다. 준호씨는 “안전한 삶을 찾겠다고 생각하면 평생 숨어다닐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좀 더 위험한 곳으로 가겠다고 다짐했죠”라고 했다.
하지만 군에서 준호씨는 또 한 번 죽음의 문턱에 서야 했다. 2015년 8월 경기도 파주의 비무장지대(DMZ)에서 하재헌 하사와 김정원 하사 등이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에 큰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수색대원 8명 중 ‘의무병 박 상병’이 준호씨다. 준호씨는 “나도 사거리 안에 있었는데 앞에 있던 분들이 파편을 다 맞아 다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전역 후에도 흙길을 걸을 때면 지뢰가 터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에 떨었죠. 누군가 밖에서 유리창을 깨는 소리가 악몽처럼 계속 꿈에 나왔고, 세월호 당시 체육관에서 제 팔을 잡으며 ‘OO 못 봤니’ 하며 물으시던 어떤 어머님의 표정도 계속 머리를 맴돌았어요.”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을 연달아 겪은 준호씨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마냥 원망만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살아 남았고, 또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찾아낸 준호씨의 극복법은 역설적이게도 ‘여행’이었다. 준호씨는 2016년 8월, 2년 전 멈췄던 여행을 다시 떠나기로 했다. 제주행 배에서 다시 시작된 준호씨의 여행은 끝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을 대신한 여행이기도 했다. 준호씨는 “단원고 교복이 모교인 김포외고 교복과 비슷해서 고교 시절 교복을 입고 떠났어요. 여행 내내 ‘이 친구들은 여기 오면 무엇을 했을까’ 생각했죠”라며 먹먹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취업준비생이 된 준호씨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연구·개발 전문가를 꿈꾸고 있다. 그는 “군에 가기 전에는 F만 면하자는 생각으로 학교에 다녀 학점이 2점대였는데, 전역 후엔 공부에 매진해 마지막 학기엔 총장상도 탔다”고 했다.
준호씨는 “아마도 저는 죽을 때까지 세월호를 안고 가겠지만 이제 세월호는 더 이상 금기어는 아니다”고 했다. 준호씨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사건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누구나 재난 같은 일이 인생에 있지 않겠느냐”며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 가장 힘든 일일 텐데 모두 각자의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