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고대부터 무시무시한 전염병에 시달려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은 소리 없이 들이닥쳐 인간의 목숨을 사냥해갔다. 아즈텍·잉카 제국은 전염병의 습격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금 세계를 뒤흔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바이러스의 역습이다. 바이러스는 지금도 인류를 숙주로 노리고 있다.
1910년 10월 시베리아 오지의 중국인 숙소에서 흑사병(페스트)으로 7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중국인들을 국경 밖으로 내쫓고 숙소에 불을 질렀다. 이들 중 두 명이 국경을 넘어 북만주 푸자뎬(傅家甸)에 도착했다. 이들은 며칠 후 숨졌지만 페스트는 하얼빈 전역과 헤이룽장성, 지린성까지 퍼졌다. 다음 해 봄까지 사망자는 4만명을 넘었다. 페스트의 매개체는 대형 설치류 마못(marmot)이었다. 마못 가죽이 인기를 끌자 중국인들은 병든 마못까지 마구잡이로 사냥했고 배고프면 고기도 먹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의학박사 출신인 우롄더(吳連德)가 발병 2개월쯤 후인 12월 말 하얼빈으로 떠났다. 그는 한 시신을 해부해 전염병이 ‘폐페스트’라고 결론지었다. 곧바로 지역을 봉쇄한 그는 환자들을 격리했다. 하지만 영하 30도의 날씨 탓에 매장이 어려워 공동묘지에 시신이 널려 있었다. 동물들이 주택가로 병균을 옮기면 재앙이었다.
1911년 정월 초하루부터 대대적인 소각작업이 벌어졌다. 폭약을 터트려 땅을 파고 2500여구를 매장했다. 이후 감염자 수가 줄었다. 그해 3월 1일 하얼빈시 방역국에서 더 이상 페스트 사망자가 없다고 보고했다. 우롄더는 중국의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후 만주에서 페스트는 소강상태를 보이다 1920년 10월 다시 유행했다. 러시아까지 퍼져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6500명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앞서 중세 유럽을 덮쳤다. 유럽에 퍼진 흑사병은 몽고제국이 퍼트렸다는 설이 있다. 몽골의 제후국인 킵차크한국은 1345년 동유럽 정벌에 나서서 크림반도의 카파를 공격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성은 끄떡없었고 몽고군에서 흑사병이 돌았다. 몽고군은 투석기로 죽은 시체를 성 안으로 던졌다. 성 안에 페스트가 퍼져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몽고군도 페스트를 견디지 못해 철수했다. 성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1347년 10월 시칠리아로 돌아가면서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그 후 5년간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2500만명이 페스트로 사망했다. 중동의 다마스쿠스에서도 매일 2000명이 죽었고, 이집트에서도 2만4000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흑사병으로 줄어든 유럽 인구는 17세기에야 회복됐다.
앞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 통치(527~565년) 때도 비잔틴제국에서 역병이 돌아 2500만명이 사망했다. 이 역병도 중세 흑사병의 페스트균으로 전해졌다.
흑사병은 지금도 중국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네이멍구의 흑사병 환자 2명이 베이징에 나타나 방역 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조기 항생제 투여로 치료가 가능해져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다.
장티푸스도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이다. 황금기를 구가하던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일 때 역병이 아테네를 덮쳤다. 기원전 430~426년 사이에 에티오피아에서 이집트, 리비아를 거쳐 그리스에 전파된 역병으로 인해 아테네 시민의 3분의 1이 희생됐다. 페리클레스도 이때 사망했고, 아테네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역병은 장티푸스 때문일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불리는 천연두는 기원전 1500년 고대 인도에서 발병했고, 기원전 1157년 사망한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됐다. 로마제국의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포함해 500만명의 로마인도 천연두로 숨졌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년)가 동쪽의 훈족과 전쟁을 벌이고 돌아왔을 때 천연두가 도시에 퍼졌다. 영국 여왕 메리 2세, 프랑스 루이 15세, 러시아 표트르 2세도 천연두로 사망했다. 고대부터 지긋지긋하게 인류를 괴롭힌 전염병이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멕시코의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천연두가 결정적이었다. 코르테스군과 아즈텍의 1차 전투 때 숨진 병사의 천연두균이 퍼쳐 2년 만에 당시 황제 쿠에트라바신 등 아즈텍 인구의 25%가 사망했다. 남미 페루의 잉카제국도 당시 퍼진 천연두 바이러스로 몰락했다. 잉카 제국의 왕과 왕실 가족을 포함해 원주민 인구의 60% 이상이 천연두에 쓰러졌다.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그렇게 사라졌다.
천연두는 1796년 영국의 제너가 백신을 개발하면서 서서히 밀려났다.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에서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1900년대 들어 가장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의한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적으로 5000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1918년 초여름 프랑스 주둔 미군부대에서 처음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 8월 첫 사망자가 발생하더니 전 유럽으로 퍼졌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됐다. 1차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스페인 독감이 미국에 상륙했고 대륙 횡단열차를 타고 서부까지 퍼졌다. 1920년 6월까지 대유행하며 극지방이나 태평양 섬들까지 전염됐다. 1920년 6월까지 최대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의 발원지는 스페인이 아니지만 1차대전 참전국이 아닌 스페인은 당시 전시 보도 통제를 하지 않아 스페인 언론에선 이 병에 관한 뉴스가 연일 중요 기사로 다뤄졌고 이 때문에 스페인 독감으로 불렸다.
당시 한국에도 스페인 독감(무오년 독감)이 퍼져 인구 167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740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스페인 독감의 피해 규모는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역사상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됐다.
1968년에는 홍콩에서 새로운 독감이 발생했다. 전염성이 아주 강해 홍콩시내의 병원은 순식간에 환자로 넘쳤다. 당시 홍콩 보건 당국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들에게 쉬도록 하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홍콩 독감은 6개월여 동안 베트남과 인도, 필리핀, 호주, 아프리카, 남미, 유럽으로 확산돼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도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바이러스를 옮겨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홍콩 독감은 호흡기 증상과 오한, 발열, 근육통, 무기력증 등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다. 신종 코로나와 비슷한 증상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에 기생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치명적인 파괴력을 갖게 된다. 끊임없이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기존 백신을 무력화시킨다. 2012년 4월부터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도 코로나바이러스였다. 우리나라도 2015년 186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38명이 숨졌다. 앞서 2002~2003년 전 세계적으로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코로나바이러스였다. 신종 코로나는 지금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인간은 계속 진화하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