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에서 세계 각국 정상을 격앙된 어조로 호되게 꾸짖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무시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툰베리의 발언에 대한 평가 없이 “행복한 소녀처럼 보인다”며 조롱하듯 언급해 논란을 자초했다.
툰베리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3분여의 연설을 통해 “당신들이 어찌 감히 이럴 수 있느냐”며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했다. 그는 눈물이 맺힌 얼굴로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당신들은 영구적 경제성장이란 동화를 거론하며 오직 돈타령만 하고 있다”며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의에는 세계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 산업계 및 시민사회 지도자 등이 참석해 있었지만 툰베리는 주눅들지 않고 매서운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모든 것이 엉망이다. 나는 여기가 아니라 대서양 건너편의 학교에 있어야 했다”면서 “당신들은 빈말로 내 꿈과 유년기를 앗아갔다”고 일침을 놨다. 기후변화를 외면하는 기성세대의 무책임 탓에 어린 자신이 나서게 된 상황이 잘못됐다는 취지였다.
툰베리는 “미래세대의 모든 눈이 당신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루빨리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올해 16세인 툰베리는 지난해 8월부터 환경파괴 및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주류 정치인들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등교거부운동을 진행했다. 매주 금요일 학교를 결석한 채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변화 해결을 촉구한 그의 외로운 싸움은 전세계 청소년층과 시민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국제기후파업’운동으로 이어졌다.
툰베리의 성토가 울려퍼진 회의장에서 각국 정상들은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의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계획을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38년까지 탈석탄국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과는 무역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툰베리 연설 후 유럽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의) 제안은 너무 급진적”이라며 “(기후변화 대처를) 방해하는 세력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지금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순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회의에 대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아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기후변화론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해 전 세계적 비난을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이날 회의장을 깜짝 방문했다. 그가 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툰베리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참모들과 자리에 앉아있다 15분 만에 자리를 뜬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툰베리의 연설 장면 일부를 공유한 뒤 “밝고 멋진 미래를 고대하는 아주 행복한 소녀처럼 보인다”고 비꼬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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