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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현성] 사법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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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법치주의의 상징이다. 입법부나 행정부를 잠정적 권리침해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반해 사법부는 권리구제 기관으로 보는 것이 우리 헌법의 기본 태도다. 따라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정치성이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은 당연한 요청이다. 사법부의 독립이란 전통적으로 법관이 외부적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이른바 판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진 오늘날에는 소송 당사자, 언론이나 이익단체 등으로부터의 독립, 특히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한층 강조된다.

최근 이른바 개혁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관련 논란을 계기로 사법부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지난 10일 우리법연구회는 공개 세미나에서 그동안의 폐쇄적 운영과 정치성으로 인해 야기된 '좌편향적 사조직'이니, '사법파동의 주역'이니, '법원 내부의 하나회'니 하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에 대해 '법관의 자기 개혁을 목표로 하는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더욱이 시사적 문제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우리법연구회 행보에 우려

그러나 순수 학술연구단체라는 해명과 달리 오히려 정치적 결사체로서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법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재판을 통해 판결로 답해야 한다. 이것이 법관의 사명이요, 사법부의 본질에 부합한다. 구체적 사건을 떠나 시사적 문제를 다루면서 특히 세미나 또는 기자회견 형태로 집단적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정치활동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법관의 자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법관이 이념성과 정파성을 띠게 된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정치활동을 하거나 정치성이 강한 판사로부터 재판받는 당사자가 결과에 승복할 리 만무하고, 이는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일이다.

또한 사법부 내에 별도의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법관은 사법부 내부로부터도 독립해 재판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해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법연구회의 규모는 이미 공개된 회원 수만 놓고 보더라도 스스로 세력화해 다른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하고 회원인 판사 스스로도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 조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법조계의 관행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 흔히 계모임 등 단순 친목단체만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회원에게 호의적이고 비회원에게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매달 세미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논문집을 함께 내는 사법부 내 판사들의 모임이라면 그들 사이의 결속력과 친밀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판사직까지 걸었던 모임'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바, 마치 혁명동지와도 같은 동지애와 특권의식 내지 엘리트 의식까지 배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조직의 회원이었던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 또다른 형태의 전관예우가 출현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정치적 결사체 변질 안 돼

사법부가 망하면 국가도, 국민도 망한다. 사법부가 독립성을 잃거나 이념성 내지 정치성을 띠게 되면 국민에 대한 권리 구제라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선거를 통해 교체 가능하다. 그러나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그것은 사법부와 법치주의의 몰락을 의미하며 헌정질서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법연구회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라는 보다 큰 가치를 위해 법관은 각자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명심, 정치적 결사체로 변질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부디 연구 활동에 매진해 향후 우리 사법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김현성(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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