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어떤 사상에 머물고 집착하면 안 된다. 이해했으면 넝마주이처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 하시면서 구겨진 종이를 어깨 뒤로 넘기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유영권 연세대 신과대 교수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원두우신학관 예배실에서 열린 고(故) 한태동 연세대 명예교수의 추모예배에서 고인을 이렇게 추모했다. 고인은 지난 8월 15일 101세로 별세했으나 당시가 방학 기간이라 신과대학 학생들이 함께 추모할 수 있도록 이날 연세대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학장 김현숙) 주관으로 추모예배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쳤다.
후학들은 한 교수가 ‘열린 학자’였다고 입을 모았다. 현우식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는 고인이 스스로 호를 ‘심재(心齋)’ 즉 ‘마음을 비운다’고 칭했다고 전했다. 현 교수는 “선생님은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나 자신들의 어떤 모습을 되찾는 게 기도야’라고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낡은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고인의 철학은 “신학은 신의 존엄성을 표상하는 ‘틀’에 불과하다. 틀은 어떤 그릇이지 궁극적인 진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신을 이해하는 틀은 앞선 문화의 틀에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드러났다.
고인은 1924년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 한진교(1887~1973)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하이 성요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7년 귀국해 32년간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며 신과대학장 연합신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훈민정음의 음성학적 분석 연구로 2002년 외솔상을 받는 등 교회사와 조직신학은 물론 의학 수학 인지과학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발자취를 남겼다.
고인의 ‘열린 마음’은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졌다. 김현숙 학장은 고인이 사재를 털어 박사과정생 연구 공간인 ‘심재 홀’을 마련해 주신 일화를 소개하며 고인을 추억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김장환 연세대 이과대학 화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에서 막 귀국해 거처가 없을 때 서강에 있던 집을 선뜻 내주셨다”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점심 식권 사업, 자신의 생일 파티를 전 교인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해마다 어린이들의 성탄 선물도 직접 마련하셨다”고 회고했다. 유영권 교수는 “‘야 야 점심 먹으러 가자’ 하시며 연구실 문을 불쑥 여시던 모습이 그립다”고 덧붙였다.
설교를 맡은 박정세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한계시록의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을 풀이했다. 그는 “고인께서는 ‘이걸 잘못 해석하면 천당에 가서 하루 종일 찬송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얼마나 지루해요?’라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단순히 죽을 몸이 부활하는 것이 아닌 ‘종’이 ‘아들’로 변하는 질적인 신분의 변화가 바로 한 박사님의 진정한 소망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신앙은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와 연결됐다. 유영권 교수는 “연구실 책상에는 고3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줄을 치며 보신 파인만의 물리학책, 수학, 신경과학 서적이 있었다”는 기억으로, 낡은 것을 버리고 끊임없이 새것을 찾던 스승의 모습을 증언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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