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기인’ 김기인은 오랫동안 무관의 제왕이었다.
김기인의 프로게이머 커리어는 기량과 비례하지 않았다. 2017년 서머 시즌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듬해 스프링 시즌에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결승전까지 올랐다가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이후로도 그의 앞길엔 탄탄대로가 놓여있으리라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기인은 데뷔 이후 늘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 기량을 유지했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10등부터 2등까지 모든 순위를 경험해봤는데 마지막 딱 하나, 우승만큼은 못 했다. 그는 결승 문턱조차 밟지 못한 채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김기인의 우승 혈이 뚫린 건 2024년. 젠지 이적 후였다. 그는 LCK 스프링 시즌에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결승전, 마지막 5세트에서 크산테로 맹활약을 펼쳐 또 한 번 멀리 달아나는 듯했던 우승을 꽉 움켜쥐었다. 파이널 MVP로 선정된 그는 우승 세리머니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같은해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까지 이루면서 국내에 이어 국제대회 무관 타이틀과도 작별했다.
젠지가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CK 결승전에서 한화생명을 꺾으면서 김기인은 두 번째 LCK 우승을 이뤘다. 자격은 충분했다. 그는 1세트에서 사이온으로 탱커와 이니시에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궁극기 ‘멈출 수 없는 맹공’으로 상대의 진형을 가르거나 주력 챔피언을 공중에 띄워 젠지가 편하게 한타를 전개할 수 있게 도왔다. 2세트에선 소환사 주문 ‘탈진’을 적재적소에 써서 한화생명의 전투력을 반감시켰다. 4세트에서도 우직한 스플릿 푸시로 젠지의 운영 난도를 낮췄다.
묵묵히 최선을 다했던 커리어 초창기를 보상받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인은 우승 직후 기자회견에서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첫 우승을 이뤘고, 1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었다”면서 “긴 프로 생활 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막바지에 하나씩 이루는 것 같아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LCK와 MSI를 모두 우승한 그의 마지막 숙원은 LoL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다. 지난해 우승 적기로 평가받았지만, 준결승전에서 T1에 져 탈락했던 대회다. 김기인은 “작년도 좋은 기회였는데 올해도 그만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기인은 월즈 우승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적응력을 꼽았다. 그는 “이전에 치른 대회들에선 좋은 성적을 냈지만 월즈에선 새로운 패치에 적응해야 한다. 도전자의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고 딱 마지막 한걸음이 남았다”면서 “남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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