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각국 정상에게 보낸 관세 서한을 공개했지만 무역 협상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트럼프는 관세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자동차, 철강 등 이미 품목별로 부과한 관세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상호관세율과 부과 시점에 대해서도 예측을 어렵게 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는 서한에서 상호관세 발표 시점을 다음 달 1일로 연기하고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율을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상호관세는 ‘품목별 관세(Sectoral tariffs)’와 별도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외에는 품목별 관세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출신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이날 논평에서 “이 발표는 다른 나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메시지”라며 “미국이 한일 양국의 최우선순위인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별 관세의 완화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실망스러운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추가 관세 인상이 발표되는 다음 달 1일 전까지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상호관세뿐만 아니라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부과된 25% 관세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양국과 미국의 협상이 더딘 이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와 철강, 전자제품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해 여전히 관세를 부과하거나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자국의 핵심 산업이 높은 관세를 부과받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보안을 제시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와 의약품, 목재 등에 대해서도 품목별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상호관세에서 한·미 양국이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품목별 관세가 유지되거나 추가로 부과될 경우, 한국으로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 ‘빈손’ 협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이 미국에 제시할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거의 모든 미국산 상품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산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인도나 베트남이 관세율 인하를 협상 지렛대로 쓸 수 것과 대비된다. 한국 정부는 조선 등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투자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도 가변성이 여전하다. 그는 이날 관세 서한을 모두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는데 상호관세율도 애초 발표와 달리 오락가락했다. 트럼프가 보낸 서한에서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각각 25%와 30%로 지난 4월 발표한 관세율과 똑같았다. 하지만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경우엔 각각 24%에서 25%로 1% 포인트 인상됐다. 반대로 미얀마의 관세율은 40%로 애초 발표한 44%보다 4%포인트 떨어졌다. 라오스도 48%에서 40%로 낮아졌다. 이런 관세율 변화 이유에 대해 트럼프는 서한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최저 관세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이 25%, 최고 관세는 미얀마 등 40%였다.
트럼프는 특히 한국과 일본에 보낸 서한을 먼저 공개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과 일본부터 공개한 이유에 대해 질문받자 “그것은 대통령의 특권”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국가들”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관세 부과 시점인 다음 달 1일에 대해서도 “100% 확고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며 재조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새러 하우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는 NYT에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며 “세부 사항 측면에서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해당 서한들은 어색한 대소문자 사용과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장을 담고 있다”며 “전통적인 무역 외교의 관례를 깬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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