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보호막’부터 챙기는 게 익숙해진 세대. 깊은 관계보다 적당한 거리, 확신보다 가능성만 남긴 채 머무는 삶.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초상이다.하지만 포기와 절망에 머물기보다는 소망을 지향하고, 복음으로부터 삶을 관통하는 진리를 발견하는 청년들에게서 교회는 희망을 본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저마다의 고백이 있다.
이 시대의 크리스천 청년들을 위로하고 응원해 온 국민일보 갓플렉스(God Flex)가 24일 오후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에서 막을 연 집회에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청년, 사랑, 삶’에 대한 이야기가 현장을 가득 채웠다.
이날 본격적인 집회가 열리기 세 시간여 전부터 현장엔 흥겨운 찬양과 환호,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입구엔 파티룸을 옮겨놓은 듯 빨간 풍선과 네온사인으로 꾸며진 포토 부스가 참석자들을 맞이했고, 곳곳에선 예수님 분장을 한 스태프들이 참석자들과 ‘인증샷’을 찍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르예 스튜디오, 갓츄, 홀리디스코, 메신저 등 크리스천 굿즈 업체 15곳이 연 부스는 교회 1층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각각 부스엔 휴대폰케이스 머그컵 키링 디퓨저 의류 문구류 등 MZ세대의 감성에 기독교적 메시지를 더한 다양한 굿즈의 향연이 펼쳐졌다. 곳곳에 설치된 재밌는 체험 부스도 재미와 활기를 더했다.
김혜령(39) 안산제일교회 집사는 “아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참석하게 됐다”며 “특히 이광민 원장의 강연이 기대되는데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비신자들도 부담 없이 교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첫 회 이후 8차례 진행돼 온 갓플렉스 현장에 팝업스토어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불어 이번 갓플렉스의 주제인 ‘사랑’의 의미를 담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럽플렉스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이 팝업스토어에서 구매를 하면 수익금의 일부(10%)를 교회에 기부해 안산 지역 내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 청년들을 지원하는 데 흘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갓플렉스에 참석한 타교회 성도 강선영(23)씨는 “크리스천 굿즈가 생각보다 다양해 신선하고 비기독교인들도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아 재미있다”며 “굿즈의 수익금이 안산 지역의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청년 상담심리지원에 쓰인다고 해서 더 의미 있게 지갑을 여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갓플렉스 참석을 위해 군대 외박을 나온 청년도 있었다. 상병 손준흠(22)씨는 “평소 좋아하는 잔치공동체의 SNS를 보고 갓플렉스 개최 소식을 알게됐다”며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종리스찬 전도사의 미혼에서 기혼이 된 비결도 듣고 싶다”며 웃었다.
오후 6시, 2000여석을 가득 채운 현장 집회는 유튜브 ‘종리스찬TV’ 이종찬 전도사의 토크콘서트로 막을 열었다. 현장에선 무대 앞 초대형 LED화면에 마련된 익명 오픈채팅방을 통해 청년들의 결혼 연애 신앙 등 청년들의 말 못할 고민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혼을 추천하느냐는 질문에 이 전도사는 “단순히 추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결혼은 예수님과 가정, 배우자를 위해 헌신하는 결단”이라고 조언했다. 연애에서 호감과 사랑의 기준을 묻는 질문엔 CS루이스의 말을 인용해 “하나님께선 스스로에겐 덜 집중하고 타인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설계하셨다”며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고 함께 성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정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실적인 고민도 이어졌다. 미래가 불투명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놓고 갈등하는 청년을 향해선 “물고기를 많이 가진 사람보다 물고기를 잡을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를 보라”고 조언을 건넸다.
신앙이 없는 이성과의 연애를 고민하는 청년에겐 “나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나님 안에서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며 최선을 다한다면 나머지는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 무대 위엔 찬양이 울리는 곳마다 천국 잔치가 열리길 지향하는 ‘잔치공동체’가 올랐다. 어둠을 밝히는 빛줄기들이 객석을 비추며 드럼 비트와 멜로디가 공간을 채우자 “마음 모아 주님을 높이는 것이 여기 모인 이유”(‘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중)라고 찬양으로 고백하는 청년들이 객석을 박차고 무대 앞으로 나와 예배당을 들썩이게 했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를 함께 부르며 일상 속 마음의 걸림돌, 상처, 두려움으로 억눌린 마음을 고백할 땐 손을 가슴에 얹은 채 연신 눈물을 닦는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1시간여 동안 집회 현장을 뜨겁게 달군 무대에는 임형규 라이트하우스 서울숲 목사가 설교자로 나섰다. 임 목사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이 사랑이 아닌가’를 역설하며 청년들에게 울림을 줬다.
“첫째,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연인, 부모, 우리 교회, 일터에서 만나는 모두에게 마찬가집니다. 사랑은 나와 안 맞는 것 같은 누군가에게 내 자존심과 고집, 옮음에 대한 기준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 나를 지키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위를 점해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고 약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기기 위해서 무장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 사랑에 힘입어 하나씩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때 우리가 찾아 헤매던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될 겁니다.”
설교 후엔 갓플렉스 사상 처음으로 부부 메신저가 등단했다. 뮤지컬 배우 황바울 가수 간미연 부부는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 되는 과정을 나눴다. 간미연는 “남편과 다른 성향으로 인해 연애 시절부터 잦은 갈등을 겪었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내가 옳다고 고집하기보단 하나님께 모든 어려움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황바울을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서로의 다름이 축복임을 깨달았다”며 “힘든 순간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 갈등이 해소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내려놓음이야말로 부부가 하나 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강연 말미 두 사람은 찬양 ‘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열심’을 불렀다. 황바울은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조차 하나님은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가사에 큰 위로를 받았다”며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로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간미연도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일하신다는 믿음, 그리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순간에도 그분이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담았다”며 “이 곡을 통해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갓플렉스의 마지막 강연자로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부부관계 회복을 돕는 예능 프로그램 ‘이혼숙려캠프’(JTBC)에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조언을 전하고 있는 이광민 마인드랩 공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 나섰다. 그는 상처 없는 사랑을 바라거나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싫어서 사랑을 거부하는 세태를 언급하며 “사랑할 때 상처는 기본값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소위 ‘진상 부부’를 상담하거나 진료실에서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해야 하는 이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서로 간에 책임과 연대의식이 없는 경우”라며 “티격태격 싸우더라도 책임감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을 수 있을 때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갓플렉스의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박건하(20)씨는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도 무너진다고 하지만 집회를 통해 기도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임 목사님의 설교에서 사랑에 대한 해석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유하은(24)씨는 “뉴스를 보면 사랑이 제일 부족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면서 “서로 어깨동무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번 갓플렉스는 준비 과정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지역 교회와 개최 장소 성도들의 적극적 참여가 빛났다. 안산지역조찬기도회에선 청년 크리스천들의 일상 신앙을 위한 ‘갓플렉스’의 역할과 본질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고, 안산제일교회 청년부 공식 SNS 계정에선 5월 내내 꽁트, 밸런스 게임, 사랑 담은 필름카메라 이벤트 등 MZ세대의 감성을 담은 콘텐츠가 사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날 집회를 마무리하며 무대에 오른 허요환 목사는 안산 시민들에게 생태하천으로서 일상의 벗이 돼주는 안산천과 이곳에 서식하는 잉어 이야기로 청년들의 사랑을 응원했다. 허 목사는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며 “1급수에만 사는 쉬리 같은 사랑보다는 1급수부터 4급수까지 어디에서나 생존할 수 있는 잉어 같은 사랑을 하길 바란다. 하나님을 통해 공급받는 사랑의 힘으로 청년들이 멋지게 예배하고 더 많이 뜨겁게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향후 안산 지역에서의 다양한 청년 집회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동백 안산제일교회 장로는 “지역마다 청년 세대의 고민이 다양하겠지만 안산 지역 또한 청년들이 위축을 경험하고 간절히 회복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며 “갓플렉스를 통해 이 시대의 청년들을 응원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안산 지역에서 열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안산=최기영 유경진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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