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전통 해녀복인 소중기와 일복으로 쓰이던 갈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무대에 섰다. 가슴엔 작은 태왁을 달았다. 태왁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물을 담는 어구(漁具)다. 어린이들이 청량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엄마 사랑이 깃든 맛 좋은 점심/ 바당 갔던 엄마 돌아오면 우린 그제야/ 함박 웃으며 간절히 기다렸던 엄마를 꼭 안아보네/그러면 어느새 엄마의 향기가 내 맘에 가득 차…”
제주 구좌어린이합창단이 ‘우리 할머니 순자의 해녀일기’를 시작하자 제주 도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생 끼니를 챙기며 물질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순자는 4·3사건으로 아빠를 잃었지만 ‘파도를 이겨낸 단단한 사람’을 꿈꾸는 아이다.
“긴 숨을 참아낸 멋진 사람 될거야/ 넓고 깊은 사람 될 거야/ 숨 깊은 해녀 될거야…”
제주의 애환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도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었다.

최근 제주 아쿠아플라넷에서 공연을 마친 구좌어린이합창단을 만났다. 합창단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남녀 학생 40명으로 구성됐다. 2012년 창단된 합창단은 제주 구좌제일교회(황호민 목사)가 만든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에서 출발했다.
2004년 마을 공부방으로 시작한 지역아동센터는 합창단 오케스트라 축구단 발레단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다. 제주 삼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당근이지’ 노래집 ‘바다랑 삼춘이랑 룰루랄라’ 등을 통해 제주를 널리 알렸고 창작 합창극 ‘우리 할머니 순자의 해녀일기’까지 완성됐다.
지역아동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미란 구좌제일교회 사모는 “당시 제주에는 아빠는 배를 타고 엄마는 밭일을 나가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며 “이런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사역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합창단은 마을의 분위기를 바꿨다. 집집마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발표회는 가족부터 학교 선생님, 동네 어르신까지 500여명이 모이는 축제가 됐다. 박 사모는 “제주 구좌 지역은 해녀박물관과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있는 곳이다. 1932년 제주 해녀들이 일제 강점기 식민지 수탈에 저항했다”면서 “아이들이 이런 역사를 배우고 또 노래로 표현하는 게 도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합창단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제주 해녀와 4.3사건을 알렸다. 합창단은 지난 2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순자 역을 맡은 홍다솔(12)양은 “주변 해녀 삼춘들을 보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멋있고 대단하다”면서 “이탈리아 친구들은 제주를 잘 몰랐을 텐데 노래를 통해 제주와 해녀 삼춘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오는 여름 환경음악회를 개최해 제주를 넘어 전 세계 바다를 지키는 환경 운동까지 펼칠 예정이다. 서울에서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협연을 계획하고 있다. 또 제주와 4.3사건을 알릴 수 있는 곳을 지속적으로 찾아간다.
제주=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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