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1000회가 넘는 헌혈로 240만명이 넘는 아기들의 생명을 구한 호주의 88세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호주 언론에 따르면 제임스 해리슨은 지난달 1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헌혈한 인물 중 하나로, 호주에서는 ‘황금 팔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리슨은 14세이던 1951년 흉부 수술을 받으면서 다량의 혈액을 수혈받은 것을 계기로 자신의 피를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18세부터 81세까지 2~3주 간격으로 꾸준히 헌혈을 실천했다. 그의 총 헌혈 횟수는 1173회에 달한다.
해리슨이 이토록 헌혈에 매진한 것은 그의 혈액에 ‘신생아 용혈성 질환’의 원인이자 치료제인 희귀 항체 ‘항-D 항체(anti-D)’가 포함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생아 용혈성 질환은 산모의 적혈구가 태아의 적혈구와 맞지 않을 때 발생하며, 이 경우 산모의 면역체계가 태아의 혈액 세포를 위협으로 인식해 공격하게 된다.
적혈구가 손상되어 혈구 밖으로 헤모글로빈이 빠져 나오는 용혈이 심해지면 빈혈과 저산소증, 전신 부종, 심한 황달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예방법은 항-D(anti-D) 항체가 있는 Rh 음성 헌혈자의 혈장으로 ‘Rh 면역글로불린’을 만들어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산모에게 투여하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항-D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진단받은 아기 2명 중 1명이 사망할 만큼 심각한 질환이었다.
적십자 호주 지부인 ‘라이프블러드’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해리슨과 같은 항-D 항체 기증자가 200명가량 있으며, 이들은 매년 4만5000명에 달하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해리슨은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혈장 헌혈을 한 사람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호주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해리슨의 딸은 “아버지는 큰 비용을 들이거나 고통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한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면서 “아버지는 ‘네가 구한 생명이 바로 네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수혜자 중 한 명인 레베카 인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혈하는 일은 놀랍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특히 우리 같은 평범한 가족이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평생을 바친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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