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사람이게 해준 김민기의 노래들 [뉴스톡!]

Է:2024-07-22 13:31
:2024-07-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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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것’ 김민기 소극장 학전 대표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22일 아침 전해졌습니다. 서울 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천둥소리가 요란했습니다.

1972년생인 제가 가수 김민기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시기는 1987년 그의 1집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발매된 때였습니다. ‘금관의 예수’처럼 불온한(?) 노래를 교회 형들이 숨어 부르던 기억 때문에, 그의 노래는 과격하고 비판적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나직이 읊조리는 서정시 같았습니다.

1987년 재발매된 김민기 데뷔 앨범


그게 김민기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목소리 높여 싸우던 시기.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고 구호를 외치던 시절, 매일 저녁 텔레비전에서 군가가 챙챙 울려 나오던 시대에 그는 수줍은 소년이 메모지에 써 내려간 시를 건네주듯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용기 있게 전해주었습니다.

김민기의 노래는 야수와 같던 시간 속에 우리를 사람이게 해주는 노래들이었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있었기에, 우리는 모든 군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슬’을 부를 수 있었기에 평범한 시민들도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시위대에 손수건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학생회관에서 ‘친구’를 부르면서 우리는 독재정권에 희생된 젊은이들 앞에서 분노하기에 앞서 먼저 추모하고 슬퍼하며 인간의 도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김민기의 노래가 없었다면 그 시절 우리는 괴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와 충돌, 투쟁과 불꽃 속에서 소진해가던 젊음이 잠시 뒷골목에서 한숨을 돌리며 고향의 친구와 풀잎 끝에 걸린 아침 햇살을 떠올리게 해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민중가요의 대부’로 그를 호출하던 대중매체에 극구 손사래를 치며 ‘뒷것’으로 남았던 그분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의 부고가 전해지자, 소셜미디어에 많은 분이 추모의 글을 남겼습니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님은 오래전 기고했던 글을 다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링크한 글은 김민기의 삶 전체를 잘 기록했으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 가본 MT에서 우리는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선생님과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노래들을 배웠다. 그때 배운 노래가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상록수’였다. 선생님이 한 잔씩 나눠주던 맥주에 얼굴이 불콰해진 우리들은 처음 들어보고 배워보는 그 노래의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에 젖어 밤하늘의 별들이 빗방울에 젖어드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원도 홍천 계곡에서의 MT. 나는 지금도 그날 밤의 별과 모닥불, 그리고 저마다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우리들은 그날 밤 세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우리들은 누구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김민기의 노래만이 김광규 시인의 시구처럼 그 해 세밑을 달궜다.”

청계피복노조위원장 출신의 노동운동가 민종덕씨는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김민기 선생이 전태일의 모범업체 설립 구상을 의식했는지 안 했는지는 몰라도 학전 운영을 전태일의 마음으로 운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난한 연극계의 현실에서도 배우 스텝 모든 종사자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정확하게 계약을 이행하고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모범업체 구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S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나네요. 배우 설경구씨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사회에 나와서 김민기 선생님을 만난 걸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호강했던 시절이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김민기의 삶을 돌아보니 ‘봉우리’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언젠가 방영됐던 KBS 드라마였습니다. 어느 좌절한 운동선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끝에 이 노래 전곡이 불렸습니다.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온 국민이 아쉬워하고 언론은 선수를 질타하던 그때 이런 노래로 우리 모두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투쟁과 분루를 고갯마루처럼 여기고, 저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잔잔히 빛나는 바다의 윤슬을 우리 삶의 이정표로 삼자는 노랫말을 저는 학창시절 두고두고 떠올렸습니다.

소아정신과인 서천석 박사님의 추모글도 김민기가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나 선생님을 생각하면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과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맑으면 우물에 비치는 내 모습도 부끄러울까? 그래서 늘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 길 원하셨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셨지요. 부끄럼도 모른 채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저로선 같은 시대에 산 것도 고마운 일인데 운 좋게 한 번 뵐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생님은 특히 어린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셨지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볼거리가 필요하다며 극단이 잘 나가던 시절 번 돈을 절대 돈이 안 되는 어린이극에 쏟아부으셨지요. 어린이 노래극 외에도 아이들을 위해 애쓰신 많은 일들 생각하면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가 남긴 노래의 사회적 의미, 학전 소극장에서 일궈낸 수많은 문화적 유산 같은 얘기를 남기려 하는 게 오히려 더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서정민 연세대 교수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지금 나처럼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나 친구를, 엘피 레코드에 걸어놓듯이 듣고, 부르고, 판이 걸리는 소리 같은 얕은 기침을 섞어 노랫말을 소리 내는 것이, 그를 회상하고, 돌아보는 일의 적격이 아닐까 한다.
역사를 정치나 경제의 파고, 그 높이를 재고, 눈에 보이는 힘을 휘두르거나, 짓누른 인물들로 연대표를 이어 써보아도 진경, 그 사실의 역사로 보면 오히려 생경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그 시대 젊은 이가, 이제 늙은 이로 이행되는 이 현대사에서 김민기 형의 노래를 듣고, 부르며, 울고 웃었던 세대인들의 심중에 흐르는 에너지와 그 너울로, 다시 마음속의 역사, 문화의 시대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교정에서, 거리에서 목이 쉬고, 숨이 막혀도, 같이 부르고, 귀에 들리던 아침이슬만 한 정서적 파워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의 노래는 암울, 분노, 눈물의 때에도 통했지만, 때로 기쁨과 희망과 다시 일어남의 기호로도 쓰였다.
처절한 낭만, 애절한 희망가이기도 했다.

2015년 5월 한겨레신문의 김민기 인터뷰 기사도 다시 회자됩니다. 두 편에 걸친 긴 인터뷰였는데, 저는 이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소문에 범진사라고 있었어. 보안사 취조실. 들어가니까 하사관들이 딱 들고 오는 게 사각형 각목이었는데 걔네는 베테랑들이지. (패는 시늉) 다다다닥… 그때 아, 내가 죽는구나. 그런 느낌을 처음 받았어. 한참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이는 거야. 나 죽는 거, 아픈 거는 감각이 멀어지고. 근데 걔네들한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미안했다고?
한없이 미안해지는 게,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
-그게, 몇 살 때인가?
“스물서너살? 그러고 풀려났는데 그때 한참 해방신학이 뜰 때였지. 누가 그러데.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는 총으로 쏴서 죽여야 된다’고 했다고. 근데 나는, 죽어가면서 나를 고문한 놈들한테 미안하고 죄송했다고 했다. 그래서 본회퍼 식의 해방신학은 아닌 것 같다 그랬지. 나중에 운동권 애들한테도 그랬어. ‘너무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게 되면 걔 닮아간다.’ 나중에 보니까 박정희 무지하게 미워하던 놈들이 박정희 비슷하게 되더라고. 내 참, 별 얘기까지 다 하네.(웃음)”

그의 부고가 전해진 오늘, 여러분은 김민기의 노래 중 어떤 곡을 들으시겠습니까. ‘아침이슬’ ‘친구’ ‘봉우리’ ‘내 나라 내 겨레’... 수많은 곡들이 있지만, 저는 이 곡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오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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