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인 보행자를 또다시 쳐 숨지게 한 운전자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1초였다며 사고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박강균 부장판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B씨는 지난해 8월 27일 오후 9시쯤 건널목이 없는 서울 종로구 종로소방서 인근에서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먼저 2차로에서 40대 C씨가 운전하던 K3 승용차에 치여 1차로에 쓰러졌고, 그 자리에서 A씨가 몰던 투싼 승용차에 한 번 더 치였다.
B씨는 사고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시간도 안 돼 숨졌다.
당시 검찰은 A씨가 전방주시를 소홀히 하고 B씨를 뒤늦게 발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피해자를 역과하는 상황을 예견 또는 회피할 가능성이 있었다거나 A씨의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가 사고 당시 두 차량의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1차 사고와 2차 사고 사이의 시간 간격은 5초에 불과했다. 1차 사고 후 공중에 뜬 B씨는 2초 뒤 바닥에 떨어졌고, 그로부터 3초 후 2차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A씨가 B씨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2차 사고 직전 1초 남짓이기에 재판부는 A씨가 급제동했더라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또 당시 B씨가 어두운 계열의 상·하의를 착용하고 있었고, 반대 차로에서 전조등을 켠 차들이 달려오던 A씨가 B씨를 알아채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했다.
도로교통공단은 현장 마네킹 실험 등을 통해 ‘A씨가 사고 장소 24.3m 후방에서부터 B씨를 인식할 수 있었기에 2차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이때 24.3m 위치에서 사고 당시를 재현한 마네킹을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운전자는 정지시력보다 저하되는 동체시력에 의존해 운전하는데, 사진은 정지 상태로 촬영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네킹은 사람보다 빛을 쉽게 반사하는 재질과 색상으로 제작돼 실제보다 더 용이하게 식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1차 사고를 내 함께 기소된 C씨에게는 “유족과 합의하고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준법운전 강의 40시간 수강도 명령했다.
황민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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