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티끌과 재(욥 42:6)

이세홍 목사(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 사무총장)


요즘 시세가 달갑지 않다. 적잖은 교회가 이념에 빠져 복음을 단념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서다. 사순절이 ‘불순절’로 딴 속셈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된다. 사순절인데 카톡에서 톡톡거리며 달려드는 것들이 있다.

지난해 연말에 시작해 1300여만명 관객몰이를 한 영화 ‘서울의 봄’이 시들할 즈음 난데없이 영화 ‘건국전쟁’이 불쑥 튀어 떠올랐다. 사실 서울의 봄을 ‘서울의 붐’ ‘민주의 붐’으로 여기던 이들이 이제 건국전쟁이 뜨자 이념전쟁으로 피 터지게 맞짱 뜰 태세다.

벌써 총선이 ‘총성’으로 시끌시끌 대며 우릴 들볶는다. 곳곳에서 이 말로 쏘아대고 처처에서 저 말로 쑤셔대고 요란함이 요동치는 세상, 말로의 요지경 세상꼴이다. 선거철이 되면 편 가르기로 갈라치는 세상이 되고 만다. 더 슬픈 것은 교회마저 좌·우파로 섞여 들썩이며 떠들썩거림이 밉다. 너무 밉다. 우리는 위(We·上)파인데 말이다.

사순절은 우리의 실존 앞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회개의 시간이다. 욥은 이것을 삶으로 체득하고 논쟁하며 터득했다. 욥의 축복과 고난, 인내 그리고 회개 이 모든 것이 욥기에서 아니 우리네 삶의 현장 기록에서 보인다. 욥이 누린 ‘부귀영화’, 욥이 눌린 ‘도탄지고’ 살이는 모두가 티끌과 재 가운데 머문 삶. 욥이 이제 귀가 아닌 눈으로, 삶을 똑바로 보게 된 것이다.

오늘 부하다고 떵떵대며 웃을 일이 아니다. 오늘 궁하다고 펑펑대며 울 일은 더욱 아니다. 뽐낼 것도 없고 떠름할 일도 없다. 욥은 재와 티끌 가운데 머문 자신을 찾아냈다. 티끌 인생인 욥, 사람은 흙이 아닌 티끌로 지어진 존재다.

하나님이 흙의 먼지(창 2:7)로 “the dust of the ground(KJV, NIV)”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시 103:14) 만물의 찌꺼기(고전 4:13)로 지어진 존재, 티끌로 창조된 존재가 인간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있던 그 시간으로 욥을 이끌면서 ‘티끌 인생’임을 욥으로 깨닫게 하신 것이다.

또한 재 인생인 욥, 티끌 인생이 죄로 하나님의 형상은 지워지고 티끌로 살아가는 존재, 먼지 인생이기에 이 저리 바람에 끌리고 날려 죄로 덮인 인생,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으로 이제 불(막 9:48)에 던져져 재로 남겨질 인생. 재가 지옥을 덮어 꺼지지도 않고 그 고통(눅 16:23)이 영원함을 본 것이다. 나사로와 함께한 부자는 죽어서 알았고 욥은 고난 중에 인내하며 본 것이다. 고난 겪은 것이 욥에게는 유익이었다.(시 119:71)

티끌과 재 가운데 인간의 실존은 절대 절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더 나음도 더 못함도 없다. 여기서 티끌로 휘날리고 재로 너풀거릴 뿐이다. 풍요로 먹고 마시고 누리고 빈곤으로 주리고 목마르고 눌리지만, 풍요와 빈곤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잠시 머문 자리이다. 더함과 덜함의 티끌과 재는 지옥에서의 영원한 더함과 덜 함일 뿐이다.

티끌을 휘날리며 ‘좌’에 빠지고 재를 너풀대며 ‘우’에 머물 일이 아니다. 잿빛 세상이 땅을 온통 덮게 하면 어쩌나. 참빛을 어찌 보나. 너무 세상으로 날뛰지 말라. 신음하는 기성세대가 구슬프고 사라지는 다음세대가 눈물겨운데…. 티끌과 재 가운데 머문 인생이 이처럼 또렷한데.

사순절,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는 시간이다. 정통교회는 이때 ‘할렐루야 송’도 사양한다. 오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결혼도 사순절을 피한다. 사순절은 온전히 나를 티끌과 재 가운데서 죽은 사순(死純)절이다. 잠잠히 주를 바라며 점점 십자가로 가까이, 오직 예수의 피에 적셔지고 잠기는 회개로 티끌을 벗고 재를 터는 천국을 경험하는 절기다. 잿빛은 가라앉고 참빛이 세상을 환히 밝히는 날이다. 그런 중에 우리는 총선을 총선(總善)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이세홍 목사는 비앤비출판사 발행인으로 대한민국기독교원로의회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문화사역자로 봉사하고 있다.

이세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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