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초기 레바논에서 사용한 백린탄이 미국 공급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미국 정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백린탄은 무차별 민간인 살상 우려가 커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이 지난 10월 중순 레바논 남부 두하이라 공습 때 사용한 포탄 파편을 분석한 결과 미국에서 생산된 백린탄 정황이 나타났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자사를 위해 일하는 언론인이 두하이라에서 155㎜ 백린탄 3발의 잔해를 발견했으며, 해당 잔해의 적힌 일련번호 등이 1989년과 1992년 루이지애나와 아칸소의 포탄 저장고에서 생산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일련번호 방식도 미군이 국내에서 생산한 탄약을 분류할 때 사용하는 방식과 일치했고, 포탄에 찍힌 ‘WP’라는 영문은 ‘백린(white phosphorus)’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를 인용해 설명했다.
두하이라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대이스라엘 공격 때 주요 거점으로 활용한 곳이다. 국제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이스라엘군이 해당 지역에 백린탄을 투하해 주택과 자동차가 불탔고, 민간인 9명이 호흡곤란으로 응급치료를 받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백린탄은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살상용 화학 무기다. 발화점이 60도로 낮지만, 불이 붙으면 2700도까지 타오른다. 특히 인체에 달라붙으면 뼈까지 타들어 가 ‘악마의 무기’로도 불린다. 영향 범위도 넓어 군인뿐만 아니라 인근 민간인도 무차별 피해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오로지 합법적인 무기만 사용한다”며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연막탄에는 백린이 포함돼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WP는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연막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백린 대신 ‘M150 포탄’과 같은 더 안전한 대안을 쓸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확실히 우려하고 있다. 더 많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질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백린탄이 어두운 곳을 밝히고 병력 움직임을 숨기려고 연막을 만들 때 사용되는 등 일부 합법적인 군사적 용도가 있다며 “우리가 다른 나라 군에게 백린탄 같은 품목을 제공할 때는 이런 합법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 전쟁법을 지킬 것이라는 완전한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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