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1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용인시의 한 고등학교 체육 교사가 한 달간 8차례나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교사는 이 기간 교육 당국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혼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3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숨진 60대 교사 A씨에게 학부모 민원이 시작된 것은 지난 6월부터다. A씨가 수업시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이 찬 공에 자녀가 눈 부위를 맞아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자녀의 눈 망막이 심하게 손상됐다. 이에 학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교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또 자녀가 눈을 다쳐 시험을 보지 못했으니 시험 점수를 인정해 달라고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대응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이 학부모는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추가로 제기했다. 또 학교 방문은 물론이고 국민신문고에 A씨의 징계를 요구하는 글을 3차례 올렸다. 또 장학사에게도 두 차례 전화를 걸었고, 법무법인을 통해 학교에 징계요구서도 제출하는 등 모두 8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과 별도로 피해 학생 측은 A씨와 공을 찬 가해 학생을 과실치상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경찰 출석 일정을 조율하던 A씨는 지난 3일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청계산 등산로에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A씨는 경기도교육청이나 용인교육지원청으로부터 법률 지원이나 상담 등 지원을 받지 못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관련 대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 사안 이후이지만 A씨가 숨지기 전 도 교육청에서 알았다면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을 텐데 어떠한 요청도 없어서 어려움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원 공세 속에서 A씨는 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A씨의 유족은 “퇴직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그동안 잘해 왔던 것만 생각하시고 이겨내 보자 말씀드렸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신고를 받고 경찰 조사도 받아야 한다는 게 충격이 많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사망하기 보름 전쯤 민원을 제기해 온 학부모와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결과 8월 하순쯤까지 학부모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다”며 “대부분 A씨가 합의를 요청하기 위해 학부모에게 통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숨진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최근 경찰에 참고인으로 소환된 학부모는 “A씨가 수업 중 해야 할 학생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앞으로 교장과 동료 교사 등 학교 관계자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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