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는 지난해 강릉에서 만들어진 국내 첫 창작 아이스쇼 ‘G쇼’가 개막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산 재활용을 위해 기획된 G쇼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부인 설화를 모티브로 그 뒷이야기를 그렸다. 병든 어머니 수로부인를 위해 아들 융이 꽃을 꺾다가 바다에 빠진 뒤 용궁에서 맞닥뜨린 사랑과 모험이 핵심 줄거리. 스케이팅과 플라잉을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에 3D프로젝션맵핑 등 미디어아트를 결합했다.
지난해 8월 한 달간 강릉하키센터에서 관객 1만3000여 명을 모으고 올해 서울에 상륙한 G쇼는 8월 6일까지 열흘 중 월요일인 31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하루 두 차례씩 열린다. 개막공연 직후 최철기 총감독과 피겨 스케이팅 안무 및 코치 김해진을 만났다.
최철기 총감독은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이 즐겨보는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 ‘점프’ ‘비밥’ '인피니트 플라잉’ 등을 연출한 바 있다. 한국 비언어 퍼포먼스의 대부로 불리는 최 총감독이지만 아이스쇼는 G쇼가 처음이다. 해외 팀의 내한공연을 빼면 그동안 국내에서 선보인 아이스쇼는 ‘피겨 여왕’ 김연아 등 스타 선수들의 갈라 공연뿐이었다. 최 총감독은 G쇼를 기존의 갈라 공연과 달리 스토리가 있는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냈다.
최 총감독은 “피겨 선수들의 표현력은 배우들의 연기와 다르다. 그래서 스케이터들이 배우처럼 연기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지난해 초연을 앞두고 스케이터들에게 6개월 정도 연기 훈련을 시켰다. 이에 비해 올해는 출연자가 일부 바뀌었지만, 스케이터들이 연기를 이해한 덕분에 4개월 정도로 훈련 기간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G쇼의 출연진 27명(더블캐스팅 포함) 가운데 실제 배우와 아역 스케이터를 뺀 16명은 전문 스케이터 출신이다. 이들 중에는 G쇼를 통해 배우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례도 나타났다. 피겨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인공 융 역을 맡은 김현은 서울예대 연기과에 아예 입학했다. 최 총감독은 “스케이터들이 이제 배우라고 해도 될 만큼 연기에 욕심을 낸다. 또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내는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아이스쇼에서 중요한 피겨 안무를 맡은 김해진은 전 피겨 국가대표 출신으로 ‘포스트 김연아’ 기대주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12년 ISU(국제빙상연맹) 주니어 그랑프리 슬로베니아 대회 우승은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에 이어 두 번째 주니어 그랑프리 우승이었다. 시니어 무대로 올라선 이후 2014년 4대륙 선수권대회 6위를 거두며 기대를 모았던 김해진은 이후 아쉽게도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2018년 초 피겨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 피겨 안무가 겸 해설가로 바쁘게 살고 있다.
김해진은 “그동안 국내 아이스쇼는 전·현직 톱클래스 피겨 스케이터들의 무대였다. 현역 시절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끼 많은 스케이터들에겐 G쇼 같은 무대가 필요하다”면서 “해외에선 스케이터들이 러시아 아이스쇼나 디즈니 아이스쇼 같은 무대를 꿈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이스쇼가 좀 더 국내에 자리 잡으면 스케이터들의 선택 폭이 넓어질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G쇼의 경우 해외 아이스쇼보다 고난도 점프가 부족하거나 페어(2인) 동작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전에 비해 스케이터가 많이 배출됐다곤 해도 해외에 비하면 아직도 층이 두텁지 못한 데다 선수 은퇴 이후 코치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해진은 “고난도 동작이 부족한 또 다른 이유로는 대사 때문에 착용하는 마이크, 바닷속 물고기 등을 표현하는 화려한 의상의 무게 탓이 만만치 않아서다. 이런 제약이 커질수록 스케이터들이 점프할 때 축을 잡기가 어려워서 구사할 수 있는 기술에 한계가 있다. 또한, 피겨 솔로를 하던 친구들이 페어를 하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G쇼에 출연한 스케이터들은 현역 은퇴 이후 코치로 활동하는 ‘정해진 길’ 대신 새롭게 미래를 설계하려는 의지를 가진 후배들이다. G쇼 덕분에 스케이터들 사이에 아이스쇼에 관한 관심이 정말 커졌다”고 덧붙였다.
G쇼는 서울 공연을 계기로 내년 이후에는 강릉의 여름 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공연 문의가 오는 만큼 향후 투어를 노리고 있다. 최 총감독은 “‘G쇼’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살아있는 뮤지컬 같은 K-아이스쇼의 출발점이다. K-아이스쇼는 클래식한 러시아 아이스쇼나 캐릭터가 돋보이는 디즈니 아이스쇼, 서커스와 결합된 태양의서커스 아이스쇼와도 차별된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G쇼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스케이터 층이 두꺼운 러시아와 중국, 동유럽에서도 출연자를 모집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 한국 인기 애니메이션이나 K팝을 활용한 아이스쇼를 만드는 것도 최 총감독의 계획 중 하나다. 최 총감독은 “아이스쇼는 아직 미개척 분야지만 한류 콘텐츠로서 가능성이 많다”면서 “K-아이스쇼는 매년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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