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수사·재판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을 부인했다. 대장동 의혹 관련 첫 재판에서 검찰이 앞세운 ‘스모킹건’이 막힌 것이다. 이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재출석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수사 및 대장동 관련 재판 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는 8일 곽 전 의원의 뇌물 수수와 알선 수재 등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을 건넨 혐의로 함께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도 무죄를 받았다. 곽 전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남욱 변호사에게서 현금 5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곽 전 의원은 2015년 김씨가 주도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에서 하나은행이 빠져나오려 하자 김씨 부탁으로 하나은행에 압력을 가한 대가로 거액의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성과급 명목으로 받은 50억원을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뇌물이라고 봤다.
김만배 “녹취록 발언은 허언”… 재판부, 인정

검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주요 증거 중 하나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을 앞세웠다. 대장동 개발업자 중 한 명인 정영학 회계사가 김씨와 대화를 수년간 녹취한 자료였다.
해당 녹취에는 실제로 김씨의 관련 발언이 나온다. 김씨는 2020년 4월 정 회계사와 대화하면서 “사람들 욕심이 참 많다. 병채 아버지는 아들 통해서 돈 달라 한다”고 토로했다. 정 회계사가 “형님(김씨)도 골치 아프겠다”고 하자 김씨는 “응, 형은 골치 아파”라고 답했다.
녹취록에는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도 담겼다. 검찰은 김씨 발언을 근거로 곽 전 의원 아들에게 건너간 퇴직금 50억원은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뇌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녹취에 담긴 말은 허언’이라고 반박했다. 정 회계사나 남 변호사 등과 함께 부담하기로 한 돈을 덜 내기 위해 지출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동업하는 동생들에게 회사 운영비 비용 등을 공통비 명목으로 부담시키면서 한 말이 끝없는 오해와 오해를 낳았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재판부는 김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 회계사, 남 변호사에게 피고인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고,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한 상황은 인정된다”면서도 “다만 김씨는 정 회계사, 남 변호사와 공통비 분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이후부터 피고인을 포함해 약속 그룹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각 50억원을 줘야 한다고 (말을)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에게 줘야 하는 50억원의 명목에 대해서도 성남의뜰 와해 위기와 연결해서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녹취록에 나온) 김씨 진술을 신빙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는 향후 다른 대장동 사건 수사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장 이목을 끄는 건 이 대표 관련 수사에 미칠 파장이다. 이 대표가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라는 의혹, 이 대표의 대장동 사업 배임 의혹 등은 모두 ‘정영학 녹취록’에 나온 대장동 개발업자 등의 발언을 주요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 입장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의 공소유지, 아직 기소하지 않은 수사 모두에서 추가 증거를 확보하거나 방어 논리를 탄탄히 다져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 대표는 1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같은 당 의원들과 지지자에게 “혼자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국 딸 ‘장학금 600만원’ 유죄 판단과 비교도
이날 재판부의 판단을 한 줄로 요약하면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성남의뜰 컨소시엄 유지를 위해 곽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그 요청에 따라 실제로 하나은행 임직원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한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뇌물죄 성립에 필요한 직무 관련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로 ‘경제적 독립’ 여부를 따진 점도 주목받았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은 성인으로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온 아들에 대한 법률상 부양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며 “곽 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법인카드, 법인차, 사택을 받거나 5억원을 빌렸다 해서 곽 전 의원이 지출할 비용을 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딸 장학금 명목으로 600만원을 받은 것은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최근 법원 판단과 비교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재판장 마성영)는 지난 3일 조 전 장관 딸 조씨가 양산부산대병원장이던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에게서 장학금 명목으로 3차례 600만원을 받은 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며 조 전 장관에게 유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당시 조 전 장관 딸이 학생 신분이라 조 전 장관이 생활비와 등록금을 부담했던 점, 딸에게 등록금을 보내면서 장학금 액수만큼을 제외하고 보낸 점 등을 감안하면 딸이 받은 장학금은 조 전 장관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뇌물수수는 무죄로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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