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때로는 짐이 되어도 ‘가족’이니까

Է:2022-09-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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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 기능을 담당하고, 어린이나 노인과 같이 도움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의 성장과 안정적 삶의 유지를 위한 양육과 보호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기능은 구성원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족은 구성원 간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친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 만족과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가족이 꼭 긍정적 기능만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40년을 함께 산 부부가 있다. 아들 딸 두 자녀를 두었다. 남편은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성장과 안정적 삶의 유지를 위한 양육과 보호를 충실히 했다. 그러나 아내가 마음이 약하고 경제 관념이 부족했다. 친인척이나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섰다. 빌려줄 돈이 없으면 빌려서 빌려주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채권자들이 남편의 직장까지 찾아와서 소란을 피웠다. 이 일로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퇴사해야 했다. 퇴사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아내의 빚을 갚아줬다. 가족이니까. 그러나 마음이 편할리 없다. 아내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짜증도 냈나 보다. 그러자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렸다. 남편은 아내에게 사과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이 사태를 겪었음에도 아내의 약한 마음과 경제 관념은 변함이 없었다. 어떤 때는 오빠가, 또 어떤 때는 동생이, 때로는 친구가 사정하면 남편 몰래 빚을 내서 빌려주거나 보증을 섰다. 그러나 남편의 월급 외에 별다른 수입이 없던 아내가 그 빚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당연히 어려웠고 결국 채권자들은 남편을 찾았다. 그렇게 여러 차례 남편은 아내의 빚을 해결해줬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다만, 이번에는 아내가 함부로 빚을 낼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아내의 동의 하에 지금은 성년 후견인 제도로 대체된 한정치산자 선고를 받은 것이다.

아내가 한정치산자가 되고 나서부터 이 가족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정년퇴직했을 때 싯가 3억원 정도 하는 아파트 한 채와 약간의 현금이 남았다. 남편이 독립해서 출가한 두 자녀의 경제적 도움 요청도 완곡하게 거절해가며 부부의 노후를 대비해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아파트를 팔아서 자녀들에게 돈을 나눠주자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정년 퇴직해서 연금 외에 더 이상 수입이 없어진 마당에 부부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남편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아내가 또다시 집을 나가더니 어느 날 남편에게 이혼 소장이 날아왔다. 이혼과 함께 재산분할로 1억5000만원을 청구하고 있다.

사정은 이랬다. 마흔 살을 넘긴 딸이 1억5000만원이 넘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 피해금액 중 1억원은 남에게 빌린 돈이었다. 딸이 채권자들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실을 알렸으나, 채권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채권자들은 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다급해진 딸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년 퇴직 후 남편의 태도를 생각하면 남편이 딸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궁리 끝에 남편과 이혼을 해서 받을 재산분할금으로 딸의 부채를 해결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남편은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아파트를 팔고 전세를 얻었다. 남는 돈으로 딸의 부채를 해결했다. 가족이니까. 그러자 아내가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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