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장사가 안돼 신용보증기금에서 4000만원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폐업을 하려니 대출금을 갚아야 하더라고요.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에서 돈을 빌려도 부족해 정부 햇살론까지 받았습니다.”
충남 공주시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오모(30)씨는 지난 1년간 빚의 늪에 빠져 있었다고 털어놨다. 2016년 25세 나이에 피자집을 창업한 오씨는 직원 5명을 두고 나름 괜찮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불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매출은 바닥을 쳤다. 1년 반 동안 악으로 버텼지만 직원들 월급은커녕 세금조차 내기 어려웠다.
버는 게 익숙했던 청년 대표는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빌린 4000만원으로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주는 등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코로나19 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탓에 영업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7월 피자집 문을 닫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폐업하려면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빚은 빚을 불렀다. 오씨는 폐업을 위해 연 이자 13% 이상의 저축은행 대출과 새마을금고 대출을 받고, 정부 대출 상품인 햇살론도 받아 모두 6000만원을 마련했다.
우여곡절 끝에 폐업을 할 수 있었지만 이후가 더 문제였다. 대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월평균 이자는 120만원에 달했다. 원리금 상환액의 20%가 이자였다. 폐업하고 직장이 없던 그에게 이만한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막노동 현장으로 출근해 일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끼니도 자주 걸렀죠.”
지금은 다행히 지인들에게 손을 벌려 새로 시작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빚 상환 부담은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다. “6개월 동안 끼니도 굶고 ‘투잡’, ‘쓰리잡’ 뛰어가며 버텼습니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네요.”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의 굴레에 빠진 청년들이 늘고 있다. 다중채무자 가운데 20대의 증가율이 가장 높다. 설상가상으로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들의 빚 부담은 한계로 치닫고 있다. 다중채무자의 위기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중채무자 급증…20대 증가세 두드러져

21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가계대출 및 기업대출 다중채무 현황’에 따르면 가계 다중채무 차주와 개인사업자 기업대출 다중채무 차주를 합친 다중채무자 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492만8262명이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이었던 2019년 말 대비 46만명(12.1%) 증가한 수치다.
특히 청년층의 증가세가 부각된다. 20대 이하 다중채무자는 39만7753명으로 규모는 다른 연령대보다 작지만 증가율(2019년 대비)은 30.6%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대의 다중채무자 증가율은 60대 이상(27.6%) 50대(11.6%) 40대(7.4%) 30대(6.4%) 순이었다.
20대 다중채무자의 대출은 대부분 가계 대출이다. 39만7753명 중 97.3%인 38만7000명이 가계 다중채무자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경우는 2.7%에 불과하다.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받은 ‘대학생 및 미취업청년 특별지원 프로그램’ 자료에 따르면 채무조정이 확정된 청년들의 연체 사유 중 51.3%가 생계비 지출 증가(30%)와 실직(21.3%)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비용증가(12.9%) 근로소득감소(12.7%) 등이 뒤를 이었다. 주식 등 투자 실패 사유는 0.8%에 불과했다.
직장인 성모(28·여)씨도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은행 4곳에서 변동금리로 약 2억2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전셋집 마련을 위한 돈이 필요했고 생활비가 부족했다. 부모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서도 대출을 받았다.
성씨는 최근 올라가는 금리가 너무 무섭다. 대출 당시와 비교해 약 1% 포인트 상승한 금리 탓에 그는 매달 추가로 25만원 이자를 더 은행에 내야 한다. 성씨는 결국 현재 사는 전셋집에서 나와 예비 남편과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성씨는 “작년만 해도 원리금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금리가 이렇게 빠르게 오르니 죽을 맛”이라며 “대출 이자를 상환하느라 저축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말했다.
포기하는 청년 늘었다
한계 상황에 몰린 다중채무 청년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를 택한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 한 원룸에서는 취업과 암호화폐 투자에 실패한 29세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월엔 경북 영주의 한 공장에서 직원 A씨(29)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평소 주식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체험학습을 한다며 학교를 떠났다가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10)양의 30대 부모도 채무 부담과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544건이었는데 이 중 20대 비율은 21%(322건)으로 나타났다. 청년 비율이 20%를 넘긴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2020년엔 20대 비율이 10.7%였다.
금리인상기 부실화 우려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는 하반기 이후 다중채무자들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앞으로 완화적 금융 여건이 정상화(금리 상승)되는 과정에서 대내외 여건까지 악화할 경우, 취약 차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그동안 대출을 크게 늘린 청년층과 자영업자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금리 추가 상승으로 인한 다중채무자들의 부실화는 전체 금융 부실을 확대할 큰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중채무자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금융 위기로 번질 위험을 낮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잠재 부실 위험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다중채무자의 신용대출과 일시상환대출을 중도 또는 만기 도래 시에 분할상환방식으로 전환해주거나 고금리 상품을 저금리·고정형 상품으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개별적인 상황에 맞춰 이자 감면, 만기 연장 등 채무 재조정을 활용해 서서히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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