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사업 민간사업자들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건넨 것으로 의심되는 ‘돈다발’을 쌓아두고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했다.
검찰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 심리로 열린 유 전 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공판에서 23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는 대장동 개발사업 초기 사업에 참여했던 정재창씨가 사무실 책상에 5만원권 돈다발 수십개를 쌓아둔 채 맞은 편 남성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나왔다.
검찰은 맞은 편 남성이 남 변호사, 영상을 촬영한 이는 정 회계사라고 주장했다. 대장동 개발사업 초기 동업자였던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 그리고 정씨가 2013년 4월 16일 사무실에 모여 유 전 본부장에게 건넬 9000만원을 책상에 올려둔 채 대화를 했고, 이 모습을 정 회계사가 ‘보험용’으로 찍어둔 영상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씨에게 영상 속 인물이 본인이 맞는지, 영상 속 돈다발은 유 전 본부장에게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 맞는지 등을 거듭 물었지만 정씨는 증언을 거부했다.
정씨는 재판 내내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라 모든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자신이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증언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한다. 정씨는 “제가 아직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건이 검찰에서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관된 것으로 통지 받았고, 여러 번 압수수색을 당했다”며 “제가 출국금지된 상태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정씨가 혐의와 전혀 관련 없는 질문에도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정씨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초창기 멤버였으나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발을 뺐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개발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해 총 3억5200만원을 받아낸 혐의로 기소돼 있는데, 이 돈을 정씨가 남 변호사·정 회계사와 함께 마련했을 만큼 정씨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깊이 관여된 인물이었다.
정씨는 이후 대장동 개발이 2015년 민·관 합동 개발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민간 개발업자들이 막대한 배당수익을 올리게 되자 이들과 유 전 본부장의 유착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120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정 회계사는 지난해 12월 정씨를 공갈 및 협박 혐의로 경찰 고소했고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다.
이 사건 ‘스모킹건’인 140시간 분량의 녹음파일을 제보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 회계사는 정씨가 요구한 120억원 중 상당 부분을 홀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정 회계사도 동업자였던 김씨, 남 변호사 등과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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