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월27일 신군부 계엄군이 광주를 무참하게 진압하던 날, 전북 전주에 있는 신흥고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날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전교생 1500여명이 운동장으로 우르르 뛰쳐나갔다. 조회대에 올라간 한 학생이 호소문을 우렁차게 낭독하자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우여!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장을 지켜온 우리 민족사에 오늘의 현실처럼 비참하고 처참한 현실은 없었다….” 이날 시위는 1980년 5월 광주·전남지역 외 고교에서 일어난 최초이자 유일한 시위였다.
◇42년만에 다큐로 탄생 = ‘5·27 신흥 민주화운동.’ 암울하고 살벌하던 시절, 신군부의 간담을 서늘케 한 신흥고의 ‘5‧27 시위’가 42년만에 다큐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5·27 불꽃.’ 26일 그 신흥고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그날의 선배들과 함께 강당인 스미스홀과 각 교실에서 1시간 분량의 증언과 장면 장면을 가슴 벅차하며 지켜봤다.
총학생회장 양상훈 군은 “영화 보는 내내 뭉클 뭉클했다”며 “선배들의 항거 정신과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3학년이던 동기회 회장 정우식(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씨는 “42년 전 생생한 이야기들을 후배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가슴 벅찼다”며 “친구들도 그 때 마음 잊지 말고 사회의 건강한 빛이 되자”고 말했다.
제작은 김종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스스로 맡았다. 2018년부터 영화를 준비한 김 감독은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의 입장과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대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교사 사이의 오해와 앙금, 그리고 40여년만의 대화 이야기를 추가로 취재해 필름에 담았다.
신흥중을 졸업한 김 감독은 “당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분들의 목소리를 담아 그 학교에서 처음 보여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그러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지역의 5·18 이야기가 많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벌했던 시절의 거사 = 신흥고의 ‘5·27 시위’는 ‘5·18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큰 자리를 잡고 있다.
“아아 광주 학우의 피의 외침이 들린다. 학우여 나가자. 나가서 우리의 피, 피를 쏟자. 승리의 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지켜나가자.”
그해 5월27일 절절한 호소문 낭독이 끝나자 학생들은 반별로 교문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교문은 열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나가면 너희들 다 죽어.” 교사들은 제발 학교 밖으로만 나가지 말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교문 밖은 어느새 착검한 계엄군과 진압봉을 든 경찰들에 의해 4중 포위되어 있었다. 하늘에는 헬기 2대도 날고 있었다. 총궐기대회 정보가 유출되면서 군경이 앞서 진을 치고 있던 것이었다.
정문 돌파에 실패한 학생들은 펼침막과 팻말을 들고 스크럼을 짜고 운동장을 돌았다. 그리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독재타도, 민주수호” “유신잔당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1시간 반동안 외쳤다.
계엄군경 지휘소에선 당장 해산하지 않을 경우 진압하여 학교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교사들은 권유했고 학생들은 탈진했다. 학생들은 강당으로 들어가 시위를 계속했다.
당시 신흥고에는 전남지역 출신 학생이 많아 광주 소식을 자세히 접할 수 있었다. 그날 남성고와 성심여고, 완산여상, 전주고, 기전여고 등의 학생들도 동시에 시위를 하자고 뜻을 모았으나, 사전에 알려지는 바람에 학교와 교사들의 만류로 무위로 끝났다.

◇긴 파장, 그리고 치유 = 파장은 길었다. 이날 시위로 학교는 6월1일까지 5일간 휴교해야 했다. 박일규, 고석, 채범석 군 등 25명의 학생들이 무기정학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이강희, 이우봉 군은 시내에서 매일 밤 낙서투쟁과 유인물을 배포하다 붙잡혀 실형을 살았다. 두 사람은 2002년 5·18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우봉씨는 지난 해 10월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강희씨는 당시 소년범이어서 재심 청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
신흥고는 2010년 신흥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징계를 받았던 27명의 징계를 무효화하는 선언을 했다.
이날 시사회가 끝나고 임희종 교장이 학생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어때요, 여러분. 선배님들 대단하시죠?”
“네∼”
학생들이 함성과 더불어 큰 박수로 대답했다.
글·사진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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