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둘러싼 후폭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의 서명이 나란히 적혔지만 국회에선 파열음이 이어지고, 법조계에선 “여전히 누더기 법안”이란 비판이 나온다. 검찰 내부에선 “검찰 수사를 막으려는 ‘범죄 암장법’”이란 성토가 쏟아졌다.
총 8가지 항목의 검수완박 중재안은 법률적 쟁점들이 얽혀있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마련한 방안임에도 기존의 형사사법 체계를 새롭게 뒤엎는 구상이라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26일 검수완박 중재안의 문제점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했다. ①단일성·동일성 논란 ②수사·기소검사 분리 ③선거 수사 공백 ④중대범죄수사청 견제 방안 등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검수완박 중재안을 둘러싼 검찰 안팎의 법률·실무적 주장을 살펴봤다.
단일성? 동일성?

“중재안에 의하면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오가는 동안 성착취물이 유포돼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면 ‘단일성’과 ‘동일성’이 없으니까요.”
여성·아동 범죄를 수사하는 서울남부지검 공봉숙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서 “단일성과 동일성 제한에 반대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중재안에 담긴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는 금지한다(별건 수사 금지)’는 조항을 지적한 것이다. 공 부장검사는 “‘별건 수사’를 막겠다며 꼭 필요한 ‘여죄 수사’까지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6대 범죄’에 한해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여기에 경찰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에서도 직접 관련성이 있는 ‘여죄’에 대해선 수사가 가능하다. 가령 ‘가평 계곡’ 살인 사건에서 경찰이 피의자 이은해의 살인 혐의 1건을 수사해 송치했더라도, 보완 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살인미수 범행 등을 직접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재안 시행 시 범죄의 단일성·동일성 항목에 막혀 여죄를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과 경찰 모두 ‘동일한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만 가능하므로, 공범이나 진범 등 꼭 필요한 여죄를 밝혀내는 것마저 금지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우려 지점으로 디지털 성범죄 사건 등을 거론한다. 불법 촬영에서 시작된 수사를 ‘n번방’을 통한 협박·성폭력 등으로 확대하고, 얽혀있는 공범들을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것이 막힌다는 입장이다. 경찰에 보완 수사를 지시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수사 기간이 길어지고 성착취물 유포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많은 공범들을 밝혀내도 더이상 수사를 못 한다”며 “몰카범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인범이라도 (검찰이) 그 자리에서 체포조차 못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용 수원지검 검사는 “(검찰 수사로) 택시로 5분이면 갈 거리를, 국민더러 반드시 다시 정류소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는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중재안의 ‘별건 수사’ 금지 취지는 현행 규정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필요하다면 ‘별건 수사’ 금지에 대한 선언 규정을 새로 만들기만 해도 된다”고 제안했다.
수사 따로, 기소 따로

“공판검사 혼자 법정에서 로펌 변호사 수십명을 상대로 혼자 쓸쓸히 공소 유지한다면, 그리고 무죄가 난다면 대체 누구 탓인가요?”
서울남부지검 공판부에 근무하는 신헌섭 검사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중재안 조항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중재안 1항은 ‘(검찰) 직접 수사의 경우에도 수사와 기소 검사는 분리한다’고 규정한다. 검찰 내부에선 “이런 방안대로라면 ‘국정농단 사건’이나 ‘대장동 사건’, ‘삼성 사건’ 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에서 수사 검사가 공판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 내부에선 사건의 전모를 잘 파악하고 있는 수사 검사가 재판을 ‘직관’할 수 없고 공판검사와 협력하는 것까지 제한되는 중재안 조항에 우려를 나타낸다. ‘삼성 웰스토리’ 사건 수사 등을 진행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고진원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서 “수사 자체가 공소(재판)의 유지에 필요한 직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고 부장검사는 “수사 자체가 공소의 제기에 필요한 활동인데, 수사검사가 공소의 제기에 필요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라며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건가. 결과가 어떨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박철우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수사·기소 검사 분리는 재판을 하는 판사와 판결 선고를 하는 판사를 분리하는 것과 같다”며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수사, 압력 버틸 수 있나”

검찰은 굵직한 선거 사건들을 직접 수사해 왔다. 박근혜정부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수사팀장을 맡았던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을 비롯해 이번 정부 들어서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을 검찰이 직접 수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여성가족부 대선 공약 제공’ 사건 등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사건을 비롯해 60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재안은 4개월 뒤 검찰 직접 수사 대상에서 선거 사건을 비롯해 공직자·대형참사·방위사업 범죄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검찰은 “국민 전체가 피해자인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봉쇄했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전국 18개 검찰청 선거전담 부장검사들은 “선거에 개입되는 불법은 더 철저히 감시돼야 한다”며 “오히려 감시의 총량을 줄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주장했다. 진재선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한 선거사건들은 공무원이 개입하는 등 법리가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라며 “검찰 직접 수사가 폐지로 선거 범죄 수사가 더 부실해지면 재판 지연과 무죄 선고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선거 범죄 수사를 진행했던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선거 수사는 정치 외풍에 흔들리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간단한 선거 범죄는 경찰도 충분히 수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은밀한 선거 운동’을 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정당이나 유력 정치인, 장래의 권력 구조 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을 이겨내고 수사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건 검찰이든 경찰이든 중수청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중수청은 누가 견제?

검찰 수사를 대신할 경찰과 중수청의 권한 비대화도 우려 지점으로 거론된다.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는 “검찰 직접수사 폐지 문제는 경찰 및 중수청 수사에 대한 견제, 사법통제 문제와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수사기관에 대해 검찰이 수사지휘권 등을 갖지 못한 상황이라면 단순히 검찰은 기소 기관에 그치고, 이들을 견제할 장치는 전무하다는 주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이관과 비유한다. 2024년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고, 사실상 국내 정보 수집권을 경찰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견제·통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김 차장검사는 “현재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중앙 집권화된 15만의 인력을 보유한 상태로 광범위한 치안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중수청 설치는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견제 장치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의 공정성·중립성 논란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검찰 스스로 정치적 외풍과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그동안 검찰이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 지검장은 “지금도 대장동 수사 등과 관련해 정치권과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수사의 공정성 논란을 제기해 왔다”며 “그 논란이 적정한지는 수사 중이기 때문에 말씀 드릴 수 없지만,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가지고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가 계속해서 심화하고, 의혹 제기도 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은 “이 사안에 대해 국민적 기대치를 만족할 수 있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공정성, 중립성 논란에 대한 입법적인 장치를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검찰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워지고 언론 등에서 더 이상 비판 받지 않으려면 제도적 장치와 노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양민철 구정하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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