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서 하수구 냄새, 코로나 이후 난 내가 아니다”

Է:2022-04-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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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상흔, 마음에도 일상을
<2> 후유증과 함께 찾아온 우울
“신체 이상 불안감이 심리상태 악화시킬 수”


이화윤(28·가명)씨는 지난 2월 중순 휴대전화로 정신과 병원을 검색했다. 이전까진 정신과 병원을 가본 적이 없었고, 갈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소개할 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정신과 전문의를 찾은 이씨는 “코로나19에 걸린 후 지금의 저는 제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모두 적어보라”며 의사가 건넨 종이에 이씨는 ‘두려움’ ‘공포’ ‘우려’를 썼다.

몸 고통에서 마음 고통으로
이씨는 지난 2월 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틀 정도 열이 났고 인후통도 앓았다. 증상은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미각과 후각에 이상이 생겼다. 완치되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증상은 계속 남아 이씨를 괴롭혔다.

격리가 해제된 첫 일주일은 음식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라면을 먹어도 물에 끓인 면처럼 어떤 맛과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먹는 것마다 하수구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딸기에서 난생 처음 맡는 이상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미각과 후각에 이상이 생기니 구역질이 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웠다. 먹을 수 있는 건 누룽지와 젓갈뿐이었다. 원래 맛이 강하지 않거나, 혹은 아주 강한 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을 때만 삼킬 수 있었다.

회사 동료들과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코로나19를 앓았을 뿐인데 돌연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맛집 탐방’ 인스타그램 계정을 취미로 운영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던 일상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그의 계정에는 이제 사진과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신체의 고통은 정신의 괴로움으로 이어졌다. 이씨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미각과 후각이 영영 회복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하루에 1시간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이씨 담당 의사는 “검사 결과상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균형이 무너져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에게는 우울증과 범불안장애, 불면증 진단이 내려졌다. 이씨는 현재 신경안정제, 수면제, 항우울제를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 이씨는 아로마 오일로 매일 후각 연습을 하지만 아직 나아지진 않고 있다. 이씨는 26일 “예전처럼 맛집을 다니고 음식을 즐기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감이 커진다”며 “기약 없이 상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 트리거된 코로나19
이씨처럼 코로나19 감염 후 몸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으로 전이된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감염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던 이들이다.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김현수(31·가명)씨는 격리 후 심각한 불안에 시달린 경우다. 그는 격리 사흘째인 지난달 5일 가슴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초반에는 가벼운 인후통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반복됐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혔다. 낮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멍하니 허공을 보는 시간도 늘었다.

김씨는 난생 처음 겪는 증상에 격리 6일째 지자체 재택치료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불을 끄거나 창문을 닫으면 숨이 막혀 괴롭다”고 호소했다. 의료진은 김씨의 격리 기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KF94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집 근처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30분 동안 산책을 하라”고 제안했다. 김씨가 확진된 상태에서 나가도 되는지 묻자 “심리·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는 외부의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곧장 마스크를 쓴 채 집 앞 인적이 드문 공터로 나가 걸었다. ‘침대에는 잘 때만 눕고 수시로 움직이라’는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격리 공간인 좁은 방안을 반복해서 쓸고 닦았다. 잠시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몇 시간 뒤 다시 나빠졌다. 김씨는 어느 순간 바닥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창문에서 무언가 자신을 덮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김씨는 결국 그날 밤 다시 24시간 동안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담당하는 인근 병원에 연락했다. 담당 의사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갑자기 외부와 차단되는 격리 상황이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했다”며 우울증을 진단했다. 김씨는 대학병원 정신의학과를 찾아 항우울제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았다.

전문가는 코로나19가 주변 환경을 연쇄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증세를 유발하는 일종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후유증을 겪는 경우 본인의 신체적 기능에 영구적으로 손상이 생기거나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심리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코로나19 확진이 주는 낙인효과, 신체적 후유증, 격리로 인한 고립 상태 등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정신과적 문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관련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유발된 사회 전반의 변화가 사람들을 더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들었다”며 “이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우울증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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