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큰 스승님이시어, 편히 쉬소서.”
‘1세대 인권변호사’ 고(故)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의 노제가 25일 고인이 졸업한 전북대에서 치러졌다.
노제는 이날 오후 고인의 유해와 영정사진이 전북대 본부 앞 광장에 도착한 뒤 1시 40분쯤 시작돼 30여 분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추도사에서 “법조인이 법 조항에만 기댄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며 “부정과 반인권 앞에서는 서슬 퍼런 단호함으로 투쟁했고 민주와 인권의 가치에 온 인생을 바치셨다”고 추모했다. 이어 “아름다운 시인이었고 가슴 뜨거운 인권변호사였으며 우리 모두의 스승이었던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며 “육신은 떠나지만 앞으로도 우리 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황민주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추모사와 김용택 시인의 추모시, 왕기석 명창의 추모곡도 이어졌다.
전북대 광장에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 현대사에 기록된 주요 시국사건들을 변론해온 고인을 기리는 후배 법조인들의 추모 현수막이 걸렸다. 전북지방변호사회와 전북대 법조 동문회 등은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뜻을 기리겠습니다’라는 추모글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인은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영면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장지인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하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 변호사는 지난 20일 8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장례는 5일 동안 민주사회장(葬)으로 진행됐다.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한 ‘1세대 인권변호사’였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 현대사에 기록된 주요 시국사건들을 변론했다.
고인이 1986년 홍성우·조영래 변호사 등과 결성한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는 1988년 설립된 민변의 전신이다.
고인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기 전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19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5년뒤 변호사로 변신해 인권변호의 길을 강직하게 걸었다.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1929∼1972)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를 기고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변론을 맡았던 1차 변호인단만 104명이었고, 최종 변호인단에는 129명이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고인은 또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는 선거 캠프 통합정부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밖에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과 사법부의 탈권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40여권의 책과 시집을 내는 등 글쓰기와 시대를 기록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북대신문사 기자 시절부터 지면에 시를 수록한 고인은 검사로 일하던 1961년 첫 시집 ‘인간귀향’을 냈고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던 1967년 두 번째 시집 ‘노숙’을 냈다. 82세였던 2016년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를 발표했다.
변호사로 일하던 2009년 고인은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들을 술회한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을 펴내며 “변호사에게는 역사의 기록자로서도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에도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를 펴내며 “과거에 눈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