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마녀사냥과 진정한 사과

Է:2021-12-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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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코틀랜드 정부가 중세 ‘마녀법’으로 무고하게 기소되어 처형되었던 피해자들을 사면하는 법안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마녀법’은 1563년에 만들어져 무려 173년간이나 시행됐다. 이 법으로 기소된 사람 대부분은 당시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여성들이었고, 이 중 3분의 2가량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들은 올빼미로 변신한 혐의, 악마를 만난 혐의, 이웃의 숙취를 유발하는 주문을 건 혐의 등 터무니없고 황당한 이유로 마녀가 되었다. 마녀로 몰린 사람에게는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고문이 자행됐다. 피해자들은 고문 행위를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마녀라고 거짓으로 자백하기도 했다.

마녀사냥은 1450년에서 1750년 사이에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소위 ‘마녀’로 몰려 처형된 희대의 사건이다. 희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6만명에서 1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유럽사회는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열과 종교 전쟁, 이어진 30년 전쟁, 기근과 페스트 전염병 등의 원인으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서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다. 이에 당시 집권 세력은 이 혼란의 책임을 ‘누군가’에게로 돌려야 했고, 마법을 부린다는 ‘마녀’가 바로 그 ‘누군가’가 된 것이다. 연속된 불행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했던 군중들은 이런 집권세력의 농간에 쉽게 부화뇌동했고, 그래서 피해가 더 커졌다.

이 마녀사냥은 르네상스 이후 합리주의, 이성주의가 확산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다만,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요술을 부린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고 있다. 그 잔재가 남아있는 셈이다.

우리도 이 마녀사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까지도 그 위력이 남아있는 ‘빨갱이’가 대표적이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극심한 좌우 갈등과 사회경제적 혼란으로 어수선하던 1948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우익과 친일파 세력을 기반으로 집권한 이승만 정권은 좌익을 ‘빨갱이’로 낙인찍고 대대적인 숙청 및 토벌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마녀’가 희생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은 사회가 혼란스럽거나 정권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어김없이 ‘빨갱이’를 찾았다.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기만 해도 ‘빨갱이’로 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빨갱이’로 몰린 사람에게는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고문이 자행됐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빨갱이’라고 거짓으로 자백하기도 했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빨갱이 취급을 당해야 했다. 자식들과 친척들은 공안기관의 감시를 받아야 했고, 연좌제로 취업이 제한됐다. 승진이나 포상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고, 결혼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의 ‘빨갱이 사냥’은 유럽의 ‘마녀사냥’처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빨갱이’는 ‘마녀’와 다름없었다. 다행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의 사과와 반성, 그리고 피해회복 노력으로 ‘빨갱이’는 마법을 부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빨갱이 사냥’에 앞장섰던 가해세력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없다. 여전히 ‘빨갱이’라는 ‘마녀’가 환생할 위험은 남아있는 것이다.

2000년, 마녀사냥의 가해자라고 볼 수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녀사냥, 종교재판 등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바 있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없는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빨갱이 사냥’에 앞장섰던 세력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기대해 본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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