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팀은 그 인사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며, 배제됐을 것으로 판단됨. 민간 사찰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언론인 등에 대한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일이 논란이 되자 지난 13일 내놓은 설명이다. 주요 피의자와 특정 기간 특이한 통화 패턴을 보인 대상자를 파악한 적법 절차일 뿐, 사찰 규정은 어불성설이라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인권수호 기관을 자임한 공수처가 이렇게 밝히자 법조계에서는 기본권 침해 우려와 공익 보호 목적이 부딪히던 수사기관 통신자료 제공 주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김경율 회계사가 공수처에 본인의 통신자료 제공이 이뤄졌음을 공개한 이후 각자의 이용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사실 열람을 신청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 정보로 통신일시나 기지국 위치추적 자료 등 구체적인 ‘통신사실확인자료’와는 구별된다.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공문 요청으로도 전기통신사업자(통신사 등)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는데, 자의적이고 무분별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법조계 사안을 취재하는 적잖은 기자들은 지난 8월과 10월 통신자료가 공수처에 제공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신자료 제공이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국민 기본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비판은 꾸준했다. 주로 공권력 남용을 지적하고 수사기관 개혁을 주장하던 의원들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들은 법원 허가 없는 통신자료 제공은 수사기관의 요청을 심사할 제도적 장치의 결여라고 지적했다. 정보주체에 대한 사후 통지 제도가 없는 점도 개정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현행법으로는 개인정보 침해 불안감이 커지고, 부당한 제공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방도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들은 공익을 위해 신속 은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반대 논리에 부딪혀 번번이 폐기됐다. 최근 논의는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소위에서 있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의 내용은 “수사기관이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을 이용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조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수사기관에서 반대가 심하다” “통지 제도는 주요 선진국에도 아직 없다”고 했고, 논의는 보류됐다.
입법 사법적 통제가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법조계는 “사실상 수사기관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고 한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통신자료 제공에 영장주의가 적용되면 수사가 지연된다는 점,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정보 주체에게 알리면 수사 사실이 노출되고 행정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근거로 현 제도 유지 의견을 꾸준히 국회에 전달하고 있다.
대법원도 2016년 통신사업자가 수사 협조 차원에서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수처장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가기관’이라 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생각은 다르다. 인권위는 2014년 통신자료 제공 사항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을 추진하라고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권고했었다. 수사기관에 넘어가는 자료가 기초적 인적정보라 할지라도 기본권 제한 정도가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사업자가 검경과 국정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기준 548만4917건이다. 이때는 공수처 출범 이전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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