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전 세계에 퍼뜨리려면 우리가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구모자를 돌려쓰고 연단에 등장한 40세의 젊은 대통령은 자신이 계획한 암호화폐 도시를 헬레니즘 시대 세계의 중심 도시에 비유했다.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리며 자신의 이름을 딴 수십개의 도시를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자신을 동일선에 둔 것이다. 이 자신감 넘치는 남자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중미 엘살바도르의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다.
21일(현지시간) AP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부켈레 대통령이 전날 엘살바도르 미사타에서 폐막한 중남미 비트코인·블록체인 콘퍼런스에 참석해 세계 첫 ‘비트코인 도시’ 건설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도시엔) 주거지, 상업시설, 박물관, 공항 등이 모두 들어설 것”이라며 “탄소배출 제로의 완전 생태도시”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도시에서는 10%의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재산세,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며 전 세계 투자자들을 향해 “이곳에 투자하고 원하는 만큼 돈을 벌어가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도시’ 건설 예정지는 엘살바도르 남부 태평양 연안 콘차과 화산 인근 도시 라우니온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화산 지열로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고 비트코인 채굴장을 운영하는 게 부켈레 대통령의 구상이다. 비트코인 시티 중심부에는 비트코인 로고를 본뜬 대형 광장이 조성된다. 그는 앞으로 60일 후에 도시 건설을 위한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도시 건설에 투입할 재원 마련을 위해 내년 중 10억 달러(약 1조1900억원) 규모의 세계 첫 비트코인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볼케이노 본드’(Volcano bond)로 불리는 이 10년 만기 채권으로 조달한 자금 중 절반은 비트코인 구매에 사용된다. 나머지 절반은 비트코인 채굴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지열 발전 등에 투자금으로 사용된다. 해당 채권은 5년의 매매 제한 기한이 종료되면 비트코인을 시장에 되팔아 추가 배당을 진행하도록 설계됐다. 예상 채권 금리는 6.5%다.
블록체인 기술업체인 블록스트림의 샘슨 마우 최고전략책임자는 이날 부켈레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채권 발행 계획을 설명하며 “엘살바도르는 ‘세계의 금융 중심지’이자 ‘라틴 아메리카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9월 엘살바도르는 부켈레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속에 비트코인을 미국 달러와 더불어 법정통화로 채택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인들이 더 쉽게 본국에 송금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 투자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국은 자국민의 비트코인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1인당 30달러(약 3만6000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했으며 수차례 비트코인을 매수해 국고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등 금융기구들은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19년 취임한 부켈레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행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을 공식화하면서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과 불투명성 등 우려에 따른 대규모 시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등 최근 부정 여론이 커지고 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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