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헌혈의집 간호사들이 ‘셀프 헌혈’에 나서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거리 대면 홍보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유동 인구도 줄어 헌혈의집을 찾는 이들이 줄자 간호사들이 궁여지책으로 직접 헌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헌혈의집 강남센터 소속 박정자(53) 책임간호사는 지난달 23일 업무 시간 중에 헌혈을 했다. 박 간호사는 19일 “헌혈 실적이 너무 부족해 일과 시간에 헌혈 조건이 충족된 20, 30대 젊은 간호사들과 헌혈에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헌혈의집 강남센터는 유동인구가 많은 직장가에 위치해 코로나 이전에는 평일 기준 60여명이 헌혈을 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지난달 12일부터는 절반 수준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헌혈의집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쉬는 날’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다. 헌혈 의지는 있지만 일과 시간 중에는 헌혈의집을 찾는 이들을 대상으로 채혈을 진행해야 해 짬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혈액 부족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일과 시간 중에도 헌혈에 나서는 일이 많아 지고 있다.
박 간호사는 “일과가 마무리될 시점인 오후 4시30분쯤 하루 헌혈자가 15명(코로나 이전 대비 4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럴 땐 우리들끼리 비상이 걸려 ‘진짜 너무 없다. 안되겠다’ 하면서 헌혈 조건이 되는 간호사들이 헌혈을 한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도 “헌혈 인구가 급감하면서 현장 간호사 중 일과 시간에 직접 헌혈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혈액 수급 위기는 수치로 확인된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이 본격화된 지난해 전체 헌혈자 수는 약 261만명이었다. 전년도인 2019년 279만명에 비해 18만명가량 줄었다. 특히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전체 헌혈 인구의 3분의 2에 달했던 10~20대 비중이 크게 줄었다. 2019년 182만명에 달했던 10~20대 헌혈인구는 지난해 145만명으로 집계됐다. 37만명이 줄어든 것으로 전체 헌혈 인구 중 65.2%에 달했던 비중도 55.7%로 10% 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경기남부혈액원 관계자는 “코로나로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전체 헌혈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10~20대 인구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일일 혈액보유량은 ‘위기 단계’가 이어지고 있다. 적십자사는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한 ‘적정 혈액보유량’을 5일분으로 보고 있다. 5일분 아래로 떨어지면 혈액 수급 위기 단계다. 지난 12~18일 일주일간 하루 평균 혈액보유량은 3.48일분에 그쳤다. 학교나 군부대, 공공기관 등에서 단체 헌혈이 급감한 것도 위기 심화의 원인이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6월 23일부터 지난 11일까지 50일 동안 총 231개 단체가 단체 헌혈을 취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취소 건수가 3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7배를 웃돈다.
코로나 탓에 헌혈 홍보 활동도 쉽지 않다. 기존에는 대면 접촉을 통해 헌혈 동참을 유도했지만 현재는 홍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수준의 활동만 진행하고 있다. 한 헌혈의집 관계자는 “헌혈 홍보 자원 봉사, 아르바이트 지원 자체가 줄어들었다”며 “이번 여름 폭염이 이어지면서 피켓 홍보도 시간대를 최소화해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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