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국보훈의 달인 6월만이라도 먼저 간 전우를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했던 조석희(96·칠곡군 석적읍) 씨가 호국보훈의 달을 하루 앞두고 칠곡평화분수를 찾았다.
조 씨는 칠곡평화분수에서 경쾌한 물줄기와 화려한 음악을 즐기는 관광객 사이에서 분수 옆 낙동강만 하염 없이 바라보며 전투에서 희생된 전우 생각으로 깊은 상념에 빠졌다.
칠곡평화분수는 칠곡군이 참천 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6·25전쟁을 상징하는 62.5m 길이의 분수대에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상징하는 55m의 고사 분수 등 10가지 모양을 갖췄다.
조 씨는 6·25전쟁 당시 ‘경찰관’과 ‘국민방위군’이라는 두 가지의 신분으로 참전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조 씨는 고향인 칠곡군에서 경찰관으로 복무했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내어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우며 고향을 지켜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국군의 승리로 기울고 인천상륙작전으로 통일을 눈앞에 두자 조 씨는 경찰관을 그만뒀다. 고향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작은 바람은 중공군으로 인해 이내 물거품이 됐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위기에 처하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민방위군에 입대했다.
1950년 12월 통과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해 만 17세에서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으로 조직된 군대이다.
조 씨는 “국민방위군은 보급품이 부족해 하루에 주먹밥 한 덩어리로 배를 채우고 가마니로 이불을 삼는 참상 속에서 아사자와 동사자가 무더기로 속출했다”며 “7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꿈속에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다 유명한 달리한 전우들의 절규가 들린다”고 말했다.
칠곡군은 조 씨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다부전적기념관에 이름을 기록하고 6·25참전 70주년을 맞아 열린 ‘대한민국을 지킨 8인 영웅들 행사’에서 호국영웅배지를 수여했다.
조 씨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벌어졌던 칠곡군은 호국과 보훈을 기리는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풍조가 지속되면 과연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 놓겠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전우들에게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면 원망의 소리를 들을 것 같다”며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보훈이다. 호국보훈의 달 만큼이라도 전장에서 이슬로 사진 전우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호국과 보훈은 특정한 시기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심을 가지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일상의 삶 속에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실천하는 문화 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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