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22일 ‘전태일(全泰壹)’ 이름이 적힌 바보회 명함 액자를 들고 서울북부지검 청사를 찾았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가 과거 계엄포고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에 대해 41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계엄당국의 허가 없이 시국성토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이 확정됐었다. 전씨는 액자를 건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씨는 검사에게 “이 검찰청 자리가 예전엔 어떤 곳이었는지 혹시 아시느냐”고 물었다. “서울북부지검이 세워지기 전엔 국군창동병원 부지였다”는 대답에, 전씨는 “그 이전에 우리 가족이 여기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고 말했다. 남산 밑 판자촌에 살다가 정부의 강제이주로 쫓겨났던 전태일 열사 가족이 자리잡은 빈 터가 공교롭게도 지금의 서울북부지검 자리였다. 서울북부지검에서 일하며 이 여사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검사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날 방문은 전씨가 재심청구 기록들을 직접 보고 싶다고 검찰에 부탁하면서 이뤄졌다. 전씨는 검찰의 재심 청구서를 보여 달라고 청했다. 검사가 보여주자 그는 “사본을 갖고 싶다”고 부탁했다. 전씨는 검찰의 기록 중 전태일 열사의 이름이 적힌 제적등본도 한참 들여다봤다. 동생이지만, 공인된 서류로는 처음 보는 형의 이름이었다. 전산화 이전인 1970년에 사망한 전태일 열사의 이름은 그간 가족관계등록부상 발견되지 않았다.
이 여사의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전태삼씨와 여동생의 이름은 있었지만 전태일 열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심을 위해 이 여사를 특정해야 했던 검찰은 출장 조사를 여러 차례 했다. 도봉2동 주민센터 주무관들의 도움을 얻어 결국 전태일 열사 아버지의 수기 제적등본을 찾아냈는데, 그 서류에 이 여사와 전태일 열사의 이름이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조금씩 찾아가면서 마음이 점점 급해지더라”고 말했다.
바보회 명함은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만날 때 쓴 것으로 전해진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1969년 재단사들을 중심으로 ‘바보회’를 만들어 회장이 됐다. 전씨는 “형은 이 명함을 비에 젖지 않는 도봉산 속의 어느 바위 틈에 끼워뒀었다고 한다”며 약간의 사연도 소개했다. 누군가가 바위 틈의 명함을 발견하고 편지로 전달, 후일 전씨가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현대사 사료와도 같은 이 명함은 액자로 3개가 만들어졌다. 1개는 대구의 전태일 열사 생가에 걸려 있다. 나머지 2개 중 1개가 서울북부지검에 이날 전달된 것이다. 전씨는 “오늘 아침 주임검사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이 액자를 청내 역사관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대검찰청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취임한 2017년 이후 과거사 관련 직권 재심 청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긴급조치 위반,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항쟁 등으로 부당하게 처벌받은 이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다. 현재도 전국 일선청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관련해 유족의 의사를 묻는 일이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소선 여사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땅히 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전씨도 “지금 서울북부지검이 있는 자리에서 전태일 열사와 함께 성장했다”며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박민지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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