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산골 어르신들 삶 절절히 담은 채록 시집 ‘뭉클’

Է:2021-04-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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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동상면민들,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출간
100여명의 150여편 수록
박병윤 면장이 6개월간 땀흘려 열매 맺어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과 '동상이몽' 추진위원들이 시집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동상면 제공.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

올해 100세인 백성례 할머니의 ‘영감 땡감’이란 시(詩)의 한 부분이다.

국내 8대 오지(奧地)라 불리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지나온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권의 시집으로 내놓아 뭉클함을 주고 있다. 시집은 면장이 주민들의 절반을 직접 찾아가 얘기를 듣고 일일이 채록해 묶어 졌다. 이 같은 채록 시집은 국내 처음으로 알려졌다.
동상면민들의 이야기를 채록해 정리한 시집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동상면 제공.

7일 완주군에 따르면 동상면 주민들은 최근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냈다.

270쪽의 시집엔 5세 어린이부터 100세 할머니까지 100여명의 작품 150여편이 실렸다. 각 시엔 주민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삶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담겨 있다.

한해살이풀인 ‘여뀌’를 바라보며 인생을 돌아본 김형순씨의 시 ‘여뀌’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참 곱다// 붉은 사과처럼/ 참, 곱다// 내/ 젊은 청춘// 저 바닥으로/ 채운 삶// 황혼에 그린/ 텃밭.

밤티마을 다섯 살배기 박채언 양은 ‘강아지’라는 시를 통해 “우리 집 강아지 미오는/ 안아달라고 멍멍멍// 우리 집 강아지 딸기는/ 안아달라고 월월월”이라고 썼다. 채언네는 아빠 엄마 언니랑 4명의 가족이 모두 이번 시집에 이름을 올렸다.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경로당 수다1’을 포함한 경로당 시리즈 10편은 산간 주민들의 생활과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기획과 제작은 시인인 박병윤 동상면장(52)이 대부분 오롯이 해냈다.

지난해 초 고향 마을에 부임한 박 면장은 ‘동네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모아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 작가나 출판사에 용역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수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코로나19로 외지인 대면을 꺼리는 분위기에 직접 나섰다.

여름부터 틈틈이 발품을 팔며 면민 1080여명중 500여명을 만났다. 70∼80대가 대부분이었던 주민들은 한글을 모르는 이도 상당수였다.

뜻을 설명하고 사연을 듣고 적고 녹음하고 다시 풀어쓰기를 6개월. 중간에 탈진해 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박 면장은 “가슴 속 깊이 맺힌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직접 담고 싶었다”며 “백성례할머니와는 10여 차례 만났다. 시집의 주인공은 동상면 주민 모두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서평에서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에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글에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울먹였다”며 “이제 동상면은 시인의 마을이 됐고, 주민 모두가 살아온 삶이 시꽃으로 피어나 그 꽃향기가 오래도록 퍼져 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윤흥길 소설가는 발문 서평에 “깊은 산골 작은 고장 동상면에 왜배기 대짜 물건이 돌출했다”며 “친숙한 농경 언어와 토착 정서의 때때옷을 입혀 놓은 시편 하나하나가 사뭇 감동적인 독후감을 안겨준다”고 적었다.

책을 받아본 ‘시인’들은 놀라움과 고마움을 함께 전했다. 한 주민은 “글쟁이도 아니고 시인도 아닌데, 이렇게 시가 되고 책을 받다니 너무 기쁘다. 우리의 삶도 시가 되다니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오는 14일 학동마을에서 출판회를 갖고 시 낭송과 후일담을 얘기할 예정이다.

동상면은 ‘고종시 마실길’에 시 액자를 내거는 한편 ‘시인의 마을 아카데미’ 사업 등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완주군도 이 시집을 ‘법정 문화도시 완주군’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활용하기로 했다.

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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