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차 직장인 고미선(33)씨의 2020년 12월 수입은 600만원이 넘는다. 이 중 300여만원은 남들처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대가로 받은 급여다. 회사 월급은 고씨가 취업한 이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운동도, 쇼핑도, 취미생활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회사에서 받는 연봉만으로는 부족하더라고요. 아끼는 게 능사는 아니니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1년간 달라진 건 그가 잠자는 동안에도 매달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300만원. 고씨는 이 부수입을 ‘패시브인컴(passive income)’이라고 부른다.
고씨는 지난해 초 재테크 유튜브에서 패시브인컴을 처음 접했다. 유튜버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는 동안에도 또박또박 돈이 들어온다.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도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근로소득의 한계를 느끼던 고씨에게 패시브인컴은 탈출구로 여겨졌다. 고씨는 “연봉을 높이는 건 어려웠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꾸준한 부수입을 하나씩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패시브인컴 시스템 구축에 나선 고씨는 온라인상에서 돈이 된다는 일을 이것저것 시도했다. 처음에는 네이버 쇼핑몰 플랫폼인 스마트스토어에 개인 점포를 개설해 운동·미용용품을 팔았다. 해외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물건을 구매 대행해 중간에서 이익을 냈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던 지난 3월에는 발 빠르게 면마스크를 수입·판매했다. 마스크 대란의 영향으로 월 매출이 1000만원을 넘겼다.
고씨는 이어 블로그를 개설해 광고 수익을 냈다. 지난 9월에는 주식 관련 전자책 2권을 집필해 판매했다. 수년간 주식시장에서 ‘개미’로 활동해 온 고씨의 노하우가 담긴 전자책은 투자 초년생 ‘주린이’(주식+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며 지난달에만 200만원 넘는 수입을 안겨줬다. 고씨는 멘토링 플랫폼에 강사로 등록해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업무 관련 강의도 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작게나마 성공을 하다 보니 자존감도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패시브인컴으로 한 달에 1000만원을 버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잔꾀로 돈 벌 기회 많다”
근로소득과 저축으로 부(富)를 쌓는 일이 어렵다고 본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패시브인컴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이 주력하는 수익원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블로그·유튜브 광고, 전자책 판매, 쿠팡파트너스 같은 제휴 마케팅 등이다. 패시브인컴을 가져다주는 온라인 노동의 진입장벽은 낮다. 누구나 짬을 내 노트북 앞에 앉으면 할 수 있다. 여러 유튜버와 블로거도 “인터넷만 할 수 있으면 몇 백만원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패시브인컴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조건을 모두 맞춰 3%대 특판 우대금리를 받아 적금을 들었는데도 이자가 턱없이 적더라고요. 이렇게 살다가는 10년이 지나도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업하고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하던 직장인 김희준(32)씨는 지난해 초부터 패시브인컴 구축에 나섰다. 티끌 같은 월급만 모으다가는 집도 차도 살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김씨는 티스토리 블로그에 좋아하는 웹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에 관한 리뷰를 40개 넘게 꾸준히 올리며 ‘애드고시’를 통과했다. 구글 애드센스에 광고를 신청, 통과해 수익을 내는 일은 전문 자격시험만큼 까다롭다고 해 ‘애드고시’라고 불린다. 출퇴근하는 1시간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만지며 수입을 늘린다. 인공지능용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이터라벨링 작업을 하며 현금화 가능한 포인트를 쌓거나 미술작품 조각을 주식처럼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낸다. 현재 매달 손에 쥐는 부수입은 10만원 안팎이지만 소득이 나오는 여러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발전시킬 예정이다. 김씨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수익이 났다. 잘하면 월급 이상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나도 부자야’라고 말할 만큼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했다.
유튜버 ‘포리얼’로 활동하는 김준영(29)씨는 지난해 4월 ‘자는 동안 돈을 버는 시스템 만들기 8가지 방법’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다양한 패시브인컴 창출 방법을 소개한 이 영상은 조회수 72만회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김씨는 여러 온라인 노동을 직접 하고 수익을 인증하는 영상을 통해 패시브인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씨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잔꾀와 인터넷으로 돈을 벌 기회가 많은 세상”이라며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무자본으로 창업하거나 콘텐츠를 만들어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와 오픈채팅방에는 패시브인컴으로 매달 30만~50만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는 ‘인증’ 글이 자주 올라온다. 김씨는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해외 경제 유튜버들에게 패시브인컴은 이미 흔하고 친숙한 소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패시브인컴은 외국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는 2019년 ‘한 달에 1000달러를 버는 10가지 전략’을 소개했다. 제휴 마케팅, 웹사이트 광고, 온라인 판매 등을 패시브인컴의 창출 수단으로 꼽았다. 해당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잠자는 동안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겠는가?’

대학생 이다복(24)씨는 유튜브에서 본 김씨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이씨는 “자본이 없어도, 일을 안 할 때도 돈이 벌린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빈손에서도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포리얼(김준영)님이 멋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처럼 전자책 한 권을 써서 30만~40만원의 수익을 냈다. 700만원가량으로 주식 투자를 하며 투자법을 공부하고 있다. 이씨는 “근로소득의 가치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 같다. 시간 대비 수익도 좋지 않고 돈을 불릴 수도 없다”고 했다.
이면에 숨겨진 노동
‘자면서도 돈을 번다’는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패시브인컴을 쉽게 벌기는 어렵다.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품이 든다. 사실상 ‘노동’과 다름없다. 패시브인컴 열풍은 직장인들이 부족한 소득을 충당하기 위해 부업에 뛰어들었던 ‘N잡러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해서 부자가 되기 힘든 세상에서 근로소득을 최대한 다변화하려는 시도다.
고미선씨는 한 달에 수백만원의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지난 1년간 평일에는 퇴근하고 3시간씩, 주말에는 5시간씩 일을 했다. 블로그나 전자책 활동에 참고가 될 자료를 찾고 스마트스토어에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다 보면 쉴 틈이 없다. ‘또 다른 노동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고씨는 “한번 패시브인컴 시스템을 세팅하면 자동으로 돈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전자책도 블로그도 계속 업데이트하고 인풋을 넣어야 수익이 나더라”며 “시급으로 따지면 적다고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든다”고 강조했다.
직장인 이모(27)씨도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패시브인컴 구축에 쏟아 붓는다. 이씨는 다이어트 관련 유튜브와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기획·편집하고, 프로그램 수강생들에게 실시간 피드백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유튜브 광고 수익과 코칭 프로그램 회비를 합치면 한 달에 120만원 정도 손에 쥔다. 이씨는 “남들이 취미생활을 할 시간에 한다고 생각하면 고단하지는 않다”면서도 “일정한 수익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갈아 넣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버 김준영씨는 “수익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 유행하는 패시브인컴은 엄연한 노동”이라며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패시브인컴도 N잡러도 소득이 나오는 통로가 여럿이라는 점에서 같다. 부업과 본업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없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기술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가외 소득에 눈을 돌리고 ‘더블잡’을 뛰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근로소득은 진짜 끝난건가
패시브인컴과 N잡러 등장의 배경에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 취재팀이 만난 젊은 세대들은 “지금은 수고스럽게 일을 하지만, 언젠가 노동과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 “회사에 평생을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출근하지 않고 월 1000만원씩 버는 삶’이 공통적인 꿈이다.
직장에서 버는 근로소득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일보가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8%가 “일해서 얻은 소득을 성실히 모아도 원하는 수준의 부를 축적할 수 없다”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문항에는 71.6%가 동의했다. 2030세대에서 근로소득의 기회가 소멸되고 있다는 인식이 더욱 강했다(국민일보 2021년 1월 1일자 1면 참조).

근로소득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노동에 대한 폄하와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 재테크 유튜버들은 “경제적 자유의 시작은 자기 인생에서 시간을 파는 시급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 “여러분이 흘리는 땀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노력이 아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직장에서 성실히 일해 돈을 벌고 모으는 사람들이 바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자유를 좇는 이들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종착한다. 주식과 건물에서 배당금·월세가 정기적으로 나오는 소득 구조를 만드는 게 젊은 투자자들의 궁극적 목표다. 김준영씨는 “자본소득은 일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패시브인컴”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펴낸 ‘노동소득과 재산소득의 관련성’에 따르면 최상위 소득 집단에서도 근로소득이 재산소득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근로소득은 임금과 사업소득·연금소득을, 재산소득은 이자와 배당·임대소득을 합쳐 계산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연소득 1억원 이상의 집단에서 근로소득이 1억원 넘지만 재산소득이 매우 적은 사람들 비중은 89.1%에 달했다. 반대로 재산소득은 많고 근로소득은 매우 적은 지대추구형 자본가는 1.5%밖에 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자산 형성에서 근로소득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최상위 소득 집단에서도 근로소득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자본소득을 패시브인컴으로 삼아 생활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통해 근로소득의 가치와 위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최장 시간 노동과 산업재해가 만연하고, 치솟는 집값에 주거 안정도 보장되지 않는다.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혹사당하고 다치고 병들기 쉽다”며 “직종, 직업, 직위를 막론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비근로소득에 유리하게 짜인 경제 구조와 법 제도를 바꾸지 않고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성공할 수 없다”며 “자산보다 인적 자본 축적과 혁신에 투자할 때 소득이 더 발생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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