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타살’ 유튜브 음모론의 출처를 추적해보았다 [이슈&탐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가 타살됐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조회수 최상위 영상에 ‘핀란드 대사관 차고에서 피살, 살해’ 제목의 영상(조회수 298만회)이 올라온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경찰 수사결과가 나온 지 넉 달이 지났는데, 해당 영상에는 아직도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식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음모론은 어떻게 퍼졌을까. 한 인터넷 매체 채널 제작의 ‘점점 커지는 타살 의혹, 박원순 자살 아니다’라는 영상이 거점 영상으로 꼽혔다. 영상 주인공은 “유서 필체가 다르다” “법원이 시신 부검도 못 하게 한다” 등의 근거를 대며 음모론을 띄운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55만회, 좋아요 수는 2만7000개나 된다. 싫어요 수는 820개에 불과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데이터로 ‘박원순’ ‘타살’ 키워드와 관련성 높은 ‘추천 동영상 연결망’을 추출했을 때 영향력(매개 중심성 기준) 최상위에 오른 것이다.


이 영상은 다시 음모론을 강화하는 개인채널로 연결됐다. 연결 영상의 주인공은 “실종 속보가 떴을 때 박 전 시장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죽을 수밖에 없게 몰아세우는 것, 당을 위해 자살하는 것도 타살이다. 둘이 뭔가 겹쳐지는 게 있다”는 식의 주장만 펼친다. 그런데 이 영상은 추출한 데이터 중 영향력 최상단 그룹에 위치해 있었다. 제작자는 ‘○○점집’이다. 이런 식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채널은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 예상 날짜,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권 가능성을 언급하는 사주풀이 채널 등으로 이어졌다.

물론 추천 알고리즘은 타살설을 검색한 유저들에게 팩트와 음모론 2가지 경로를 모두 안내했다. 한쪽은 박 전 시장 사망 관련 수사결과 내용을 발표한 전통언론 뉴스, 다른 한쪽은 타살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한 개인채널 영상이다. 그런데 추출한 영상 123개 중 절반 이상(53%)이 음모론을 다룬 개인채널이었다. 영향력 상위 20개 영상 중 11개도 음모론을 다룬 개인채널이 차지했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음모론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생태계와 광장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콘텐츠를 우선시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다’는 유튜브 측 설명은 이 지점에서 흔들린다.

알고리즘 실험을 통해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19일 서른 살 ‘음모론’씨 이름의 유튜브 계정을 새로 만들고, ‘박원순’ ‘타살’ 키워드를 넣어 검색된 영상 3개를 시청했다. 다음날 유튜브는 곧바로 홈 화면 영상 8개 중 무속인 영상 1개, 자극적 제목의 영상을 주로 만드는 개인 유튜버 영상 4개, 기타 영상 3개를 추천했다. 음모론을 강화하는 ‘타살당하다’라는 제목의 영상도 있었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 몇 가지를 더 시청하자 음모론씨에겐 대표적 가짜뉴스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불륜설 영상까지 추천됐다. 해당 영상 뒤에는 불륜 관련 콘텐츠를 담은 자극적 내용의 영상이 연이어 추천됐다. 실험 15일째 추천 동영상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전 부실장의 극단적 선택 등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제작 영상도 올라왔다.

국민일보는 소셜미디어 분석 프로그램 노드엑셀(NodeXL)을 활용해 음모론, 가짜뉴스 등이 퍼지는 연결고리를 추적했다. 검색 기록을 배제한 구글 데이터를 추출해 알고리즘에 따른 유튜브 추천 동영상 연결을 따라 가보는 방식이다.

분석 결과 유튜브 알고리즘은 뉴스를 보더라도 음모론 유포 영상을 상단에 연달아 추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모론 영상을 한 번이라도 시청하면 유튜브는 또 다른 음모론 영상들을 무더기로 추천 영상 목록에 띄웠다. 유튜브는 플랫폼 책임자로서 가짜뉴스를 통제하겠다고 했지만 유튜브 유니버스 속에선 오히려 자극적인 영상이 빠르게 다음 시청 영상으로 제시됐다.


특히 알고리즘은 음모론이나 가짜뉴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 것으로 분석됐다. 키워드 ‘4·15’ ‘부정선거’로 추출한 101개 추천 동영상 네트워크는 음모론 사이의 연결성이 얼마나 유기적인지 보여준다. 4·15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영상은 공병호 전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운영하는 ‘공병호TV’ 영상이다. 추출한 영상 중 12개가 해당 채널의 영상이었다. 이 채널의 영상들은 26개의 다른 채널들과 추천 동영상으로 연결돼 부정선거 의혹을 키우고 있었다.

보수 인터넷 매체가 제작한 부정선거 의혹 관련 뉴스 역시 같은 논리의 의혹을 제기하는 다른 인터넷 매체 영상과 추천 연결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 영상은 이후 부정선거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개인 채널과 연결됐다. 유튜브 속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은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로 진행됐다는 음모론으로까지 연결을 확대했다.

총선 조작 의혹은 박 전 시장 타살설과도 교집합을 가졌다. ‘핀란드 대사관 차고 피살’ 제목의 영상을 제작한 채널이 바로 부정선거 주장 영상을 반복적으로 제작하며 퍼트린 개인채널이었다. 타살설, 부정선거 등 서로 관련 없는 음모론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병렬 배치되며 유대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음모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게 비밀결사조직인 ‘일루미나티’가 코로나19를 퍼트렸다는 내용이다. 알고리즘은 이를 최저임금 인상에 배후가 있다는 음모론과 연결시켰다.

해당 영상은 “문재인정부는 최저임금을 강제로 인상했다. 그 목표는 중산층을 파괴해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 배후에 일루미나티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상의 주인공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자 붕괴 실태를 설명하다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에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조각 33개가 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엮으며 이 같은 주장을 설파했다.

이 영상은 코로나19와 관련한 10개의 추천 영상과 연결돼 있다. 추천 영상에는 뉴스 채널, 방송사 예능 채널도 있었지만 코로나19 관련 음모론 제기 영상과의 연결성이 특히 높았다. 음모론을 본 유저가 또 다른 음모론을 접할 경로를 만들어준 것이다.


여장을 한 남성이 페미니스트 운동가임을 흉내 내며 여권신장 운동을 희화화하는 동영상이 있다. 대표적인 안티 페미니즘 콘텐츠다.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로 데이터를 추출했을 때 매개 중심성 최상단 그룹에 꼽혔다. 알고리즘은 이 동영상 추천 네트워크에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이 들어간 영상, 유흥업소에 위장 취업한 영상 등을 포함했다.

여성 게임 유튜버가 “탈코르셋을 강요하지 말라”며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영상도 영향력 최상위에 올라왔다. 이 영상을 시청한 유저에게 알고리즘은 3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6년 동안 페미니스트인 척 과장된 행동을 하며 수억 원을 번 외국 남자를 다룬 이야기, 급진 페미니즘 논리를 비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룬 이야기들이다.

86개 추천 동영상 연결망에 포함된 방송사 교양 채널 영상은 10개에 불과했다. 반면 국내에서 열린 안티 페미니즘 집회에 올라간 여성 유튜버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은 영향력 3위였다. 자극적 제목이나 내용을 담은 콘텐츠가 추천 연결망에서 영향력 상단에 배치된 것이다.


결국 유저가 알고리즘이 배치한 추천 동영상 순대로 학습한다고 가정하면 페미니즘은 그저 조롱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우려가 크다. 이들 영상에 대한 유저 반응이 활발하면 이는 해당 영상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 다시 새로운 유저를 빨아들이는 효과도 내게 된다. 토론은 사라지고 혐오는 확대된다. 실제 댓글 반응도 비슷했다. 탈코르셋 비판 영상에 달린 인기 댓글 상위 100개의 감정어를 분석한 결과 페미니즘과 연결성이 높은 단어는 ‘나쁜 것, 사이비, 정신승리, 모순, 설교, 비정상, 정신병’ 등이었다.

‘동남아’를 키워드로 추출한 추천 영상 연결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치중립적 표현의 단어로 추출한 88개 영상 가운데 가장 매개 중심성이 높은 콘텐츠는 한국 남성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셋업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선정적 내용을 담은 영상으로 나타났다. 영상은 ‘필리핀에서 셋업범죄가 많다’ ‘꽃뱀이 많다’는 등의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며 인종 차별적 선입견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 영상을 본 이들에게 추천된 5개 영상 중 3개도 같은 식의 차별을 심화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과의 성매매 방법을 다룬 영상도 추천 연결망에 포함됐다. 외국인에 대해 ‘역관광’ ‘참교육’ 등 표현을 쓰는 영상, 유럽의 빈국 여성이 돈 많은 외국남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 등의 선정적 표현을 쓰는 저질 콘텐츠까지 영향력 상단에 올랐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근본적 목적은 사람들이 더 많이 체류하게 하고, 자신들의 광고수익에 더 많이 도움되는 영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토끼굴(rabbit hole)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좀 더 자극적인 영상을 추천해 사람들이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에요.”

유튜브 리터러시를 담은 책 ‘야만의 회귀, 유튜브 실체와 전망’의 저자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극단적 콘텐츠 중에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거의 끝부분에 있다. 추천 영상을 보다 보면 터무니없는 내용을 다루는 영상까지 도달하게 되는 현상이 있다”고 언급했다.

국민일보가 추천 동영상 연결망을 분석해 가늠해 본 알고리즘의 단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취향을 배제한 중립적 성격의 단일 단어를 넣어 추천 동영상 연결망을 추출했을 때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이고 급진적인 내용의 영상이 영향력 상단 그룹에 배치됐다. 이는 추천 동영상만 클릭하며 콘텐츠를 탐닉하다 보면 자극적인 뉴스나 음모론, 가짜뉴스 등에 노출될 여지가 높다는 의미다.


이들 콘텐츠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이 많아서 이를 소비한 유저들의 선입견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분열과 갈등을 심화하는 기제도 된다. “난민 지원하자는 사람은 생계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담은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인기도 상위 100개를 분석하자 ‘난민, 안돼, 국민, 무슬림, 폐지’라는 단어가 중심 감정어로 올라왔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공짜, 우리나라, 고집, 국민세금, 거지, 감성팔이, 감성충, 강요’라는 혐오 표현과 연결됐다. ‘우리나라’라는 단어 옆에는 ‘안 돼, 보여주기식, 문재앙, 어이없음, 불법체류자, 자국민, 우선’이라는 표현이 연결됐다.

박세원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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