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의 최신 그래픽카드 RTX3080 초도 물량이 국내 컴퓨터 부품 도·소매의 메카인 용산 전자상가를 거치지 않고 풀렸다. 용산 판매상들은 위기라고 아우성치지만, 소비자들은 기존 “용산 판매상들이 인과응보를 당했다”는 반응이다. 이번 판매로 용산 중심의 공급 구조가 바뀔지도 주목되고 있다.
지난 17일 출시된 RTX3080은 지포스(GeForce) 30시리즈의 첫 그래픽카드로 이전 세대인 RTX2080와 비교해 70%의 성능 향상을, 최상위 라인인 RTX2080 Ti와 비교해도 약 30% 성능이 향상된 제품이다. 그럼에도 권장소비자가격(MSRP)은 2년 전 출시된 RTX2080과 같은 최소 699달러(약 82만원)로 책정됐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한국 정식 발매 가격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2018년 발매된 RTX2080 같은 경우에는 MSRP가 82만원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최대 150만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됐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만 오면 컴퓨터 부품 가격이 급상승하는 원인으로는 보통 용산 중심의 유통구조가 꼽힌다. 한국 시장에서는 보통 제작사(엔비디아)에서 나온 제품이 유통사, 도매상, 소매상 등 최소 3단계 이상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유통 단계를 거칠 때마다 마진이 붙으면서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르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아마존 등 해외 사이트에서의 그래픽카드 직구 방법을 공유하는 등 ‘용산 패싱’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직구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국내 컴퓨터 부품 시장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직구를 하게 되면 한국 판매량으로 안 잡히기 때문에 제조사의 수량 배정에서 불리해지고 이는 시장 전체 규모의 축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자 수입업체들도 대응에 나섰다. 에이수스(ASUS) 수입사 인텍앤컴퍼니는 RTX3080 초도 물량 전량을 쿠팡을 통해 90만원대에 유통에 나섰다. 환율이나 부가세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폭리 없이 정가에 유통된 셈이다.
인텍앤컴퍼니가 관행을 깨면서 타사들도 가격 재조정에 나섰다. 다른 수입사도 처음에 일부 판매처가 RTX3080을 147만원에 내놓았다가 비난 여론이 커지자 가격을 인하해 아예 공지를 했다. RTX3080의 상위 모델인 RTX3090도 부가세 등을 고려하면 MSRP인 1499달러(약 176만원)과 큰 차이가 없는 190만~200만원대로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용산 판매상들 사이에서는 “자영업자 죽이기” “용산 상가들은 장사 접어야 한다”면서 우는 소리가 나왔지만 그래픽카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이모(30)씨는 “용산에서 판매상을 거치면서 사실상 폭리를 많이 취해왔는데 다이렉트로 쿠팡으로 판매되면서 이런 게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용산 판매상들이 그래픽카드뿐만 아니라 D램, 조립PC, 게임 콘솔 등에서도 폭리를 취해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고 제품을 신형으로 재포장해서 판매하는 등의 행위가 커뮤니티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용산 판매상들 그동안 폭리 취하고 불친절했는데 이제 이런 유통이 대세가 될 것”이라면서 이런 분위기가 다른 부품 등으로도 확대되길 기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에 RTX3080 초도 물량이 먼저 공급되면서 가격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추후 RTX3070이 출시될 때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전반적인 컴퓨터 부품 공급 구조 혁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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